사회, 지방, 농촌

식민과 분단

두 아들 아빠 2014. 2. 20. 12:41

한국에서 식민과 분단 두 가지를 제껴두고 논하는 역사,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모든 이야기는 손톱 밑의 떼나 가시 이야기며

적나라 하게 말하면 쓰레기다. 남북을 통털어 한반도에서 비틀린 모든 현상은 거의가 식민과 분단이 원인다.

 

식민은 재정신이 아니며 분단은 지극히 비상적 상황이다. 그런데 온전한 정신인 척, 평화로운 상황인 척 하고 있다.

식민이 은혜였다는 인간들이 아직 우리사회에 주류층을 이루고 보통사람에게 통일을 말하면 뻘쯤하게 처다 본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그 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주었던 예수를 계파적 이해타산을 떠나 모두가 연합해서 죽였다.

예수가 자신들의 지위를 무너트리려고 했기 때문도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식민 상태에 있던 유대인들이 재정신이 아니였음도 있다.

예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열두 제자들은 참 오래 동안 찌질했다. 이들도 원래 재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탄압했던 사울이 예수를 재대로 따르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로마가 전격적으로 예수를 받아 드린 점은 곱씹어 볼만 하다.

 

당시 유대인들은 계파가 여럿있었지만 남북처럼 지리적으로 분단되지는 않았었다. 예수님의 전도사역이 공간적으로 막힌 적은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에 이어서 미국의 안보, 경제 식민지 상태에 있는 한국인들은 지금 재정신일까?

 

식민지 하에서 초기 산업화와 근대 자본주의를 받아 드린 한반도는 비극에 비극을 더 한 일이다. 어떻게 하던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조세 저항심은 약탈 당한 식민지인의 피해 의식이 전수되어 아직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가 친일파을 청산 못해서가 아니라 양심적 민족주의자들이 모조리 도륙 당한게 문제였다. 이제 인위적인 친일파 청산은 물 건너 간 듯하다. 가슴으론 인정할 수 없지만 역사의 공의를 이루는 가장 은혜로운 방식인 세월의 희석에 맞겨야 할 듯하다.

 

식민이 국민의 이름 얻기 위해 치른 통과 의례가 6.25 동란이었다. 좋은 예는 아니지만 6.25는 일종의 '살풀이' 였을 수도 있다. 천형적인 신분제도를 끊기 위한 마지막 '피의 살풀이' 말이다. 잔혹했던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서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의 방식과 같을 수 없다. 독일 통일은 분단 후 28년 걸렸지만 한반도는 그 두 배인 60년이 넘었다. 한반도의 통일은 '살인의 추억'이 잊혀져야 가능하다.

 

남북이(기득권들이) 더 어려워 져야 평화와 경협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과 박근혜, 양 정권이 더 어려워져야 하고 남북 경협에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뛰어들어야 한다. 개성공단에 대기업이 있었다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이제 남북은 분단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정말 다행이도 박근혜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2015년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모두 목숨을 바치자는 국정원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남쪽에서 종북몰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친 것은 북한 정권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31살의 이방원이 56세의 정도전을 단칼에 베어 버린 일이다. 그걸로 게임은 끝났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남북의 정권이 사전 정지작업은 어느 정도 됬다고 본다. 그 결과이자 시작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