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자크엘룰의 저서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의 7장 삶을 향한 사랑(요약 편집)

두 아들 아빠 2018. 2. 10. 15:59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여러 방편으로 논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결핍을 감추기 위한 것이고 그렇게 무수히 언급된 소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와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현대사회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 단어만 남았다.


사랑이 해체된 현상을 낙태와 피임, 시험관 배아 현상으로 보았다. 낙태가 합당한 이유 없이 시술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 함께 나눈 기쁨과 애정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남의 남자의 정자를 수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불륜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런 것이 고민 없이 행해지는 상황에서 커플의 의미는 없다.


사랑이 성행위의 고상한 표현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고는 하는데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은 지속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자유 없는 사랑도, 사랑 없는 자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자유는 의미와 목적이 분명이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랑도 명확히 대상이 있어야 한다. 조국이니, 인류와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향한 느낌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사랑이란 이름의 끔찍함이 두 가지가 있는데 독점, 소유, 지배를 통한 흡수하려는 것과 ‘’에로틱한 것이다. 에로스 역시 총체적으로 지배하려고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열정 - 책임 - 인정 - 대화 - 불가분리 - 일체성의 단계가 있다.

열정은 사랑의 기폭제이지 그 자체가 사랑의 전부나 완성이 아니다. 사랑과 섹스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깊은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이 삶에 통합되기 때문이다.삶은 축제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과 진부한 일상이 기다리는 현실이다.

공동으로 맡아야 할 책임이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리면서, 사랑은 약화된다. 기념일을 챙기는 잠시 반짝이는 열정만 남아있게 된다. ‘책임지는 사랑을 감수 할 때 더 높은 단계의 사랑으로 나간다.


서로의 다름을 진정으로 인정하려면 대화가 필요한데 대화가 안 되는 이유는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시기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했거나 상대를 증오나 경멸, 냉소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화는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말 할 때 침묵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을 망각하고, 먼저 스스로가 틀렸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불가분리의 단계에서 습관에 의해 상대를 흡수하려거나 새롭게 성적으로 불타는 욕망을 겪을 수 있다. 성적인 행위를 할 수 없어서 우정 같은 사랑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우정이 사랑과 다른 것은 독립성의 유지다.


대개 인생이 끝날 무렵에 부부가 일체성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나의 죽음이 아니라 상대방의 죽음이 커다란 두려움으로 온다. (자녀가 어렸을 때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해 본 심정과 유사하다.) 사랑은 삶의 모든 것을 점차적으로 함께 통합해온 두 사람의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불가분의 한 몸을 이룬 커플은 외로운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엄청 난 힘을 가져다준다.


나의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계시 속에서 성취해야 할 임무가 되는 시간이 다가 온다, 이 단계를 넘으면 상대방의 이타성을 인정하는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다. 인간관계에서의 사랑하는 커플은 우리 가운데 볼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

나이가 들면서 미래가 기대와 약속이 아니라 위협으로만 다가온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주어진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네 인생의 실상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