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개를 키운다는 것

두 아들 아빠 2005. 9. 7. 14:56
 예전에는 개를 집안에서 키우지 않았다. 그저 싸립문 앞에 매어 놓아서 빈집을 지켜주고 돌아온 주인을 반기며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물을 먹었다. 사육의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당당히 집안으로 들어와 침대며 식탁이며 거칠 것없이 사람과 똑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

사육이 아니고 애완용으로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다.

 

 

 

이는 분명 서양문화 특히 미국의 영향이다.

우리나라가 매년 여름만 되면 외국의 동물 애호가로 부터 개를 먹는 무지한(?)

민족으로 매도 당하기 일 수 였다. 86과 88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때

정부는 이런 외국의 눈치를 보느라 보신탕집의 간판을 치우기도 했다.

 

개를 식용으로 하는 문제로 동물애호가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개가 집안에서 사람 노릇을 하며 키우는 일이 온당한 것인가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개념이 없다가 제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게 되었다.

일전에 늦은 밤에 집 밖을 잠시 나왔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개를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여고생인 듯한 학생이 다가 와서 개 이름을 부르면서 건네 받아서  입술을 갔다 대고 부비며 엄청나게 반가워 했다.

이런 모습을 아주머니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아주머니가 집안 일을 도와주시는 남이라도 문제인데, 만약에 엄마라면

(틀림없는 엄마 같았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엄마는 친숙하니까 개를 보고 더 반가워 했다?  그런 건 가요?

 

가정 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누어야 할 온당한 교제에 개가 끼어 들어서 방해를 하거나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다.

가족간에 충분한 사랑를 주고 받으면서 넘치는 사랑을 개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문제 삼지 않겠다.(넘치는 사랑은 이웃과 나누어야 함)

 

과연 개를 키우는 수 많은 가정들이 차고도 넘치는 사랑으로 개를 키우는가?

자식새끼라고 변변히 찾아오지 않는 홀로된 독거 노인이 적적해서 개를 키우는 경우 와는 사뭇 다르다.

가족간에 대화나 배려가 턱없이 모자라면서 이를 개를 통해서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사람과 개를 주재로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그냥 이야기 일 뿐이다.

무슨 큰 의미를 부여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의미를 주어 봤자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교훈 아닌 교훈 밖에 더 얻겠는가?

 

사람과 개의 관계는 일방적인 사랑만 존재한다.(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상을 떠나서 이는 온전한 사랑이 분명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간에 마땅히 나누어야  할

교제를 가로 막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개에게 주는 사랑은 일방적이다. 이런 사랑에 익숙하게 되면 온존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잊게 된다.

 

인간의 원죄와 타락으로 자신이 고귀한 생명체임을 망각하고 짐승을 우상화 한다든지

동물에 관하여 사육과 동거의 의미도 구분짓지 못하는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

 

이 기사 처럼 개 버리듯이 사람까지 버릴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