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딸 덕에 비행기 타고 아들 덕에 버스 탄다” 했다.
실제론 딸이 실속 있건만 명분이 따라주지 않는 데 대한 위로의 말이었을게다.
한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요즘은 “사위 얼마 벌어오는지는 소상히 알아도 아들 몇 푼 버는지는 도무지 알 길 없다”는 시어머님들 푸념이
종종 들려온다.
최근 들어선 고시 열풍에 가세한 여성들을 필두로 기존의 “남성 독점 여성 배제” 영역의 여성 진출이 위세당당하기까지 하다.
물론 오늘의 성과는 멀고 험한 길을 걸어온 여성들의 노력이 마침내 ‘티핑 포인트(분기점)’에 이른 결과다. 단 그 이면엔
‘아들선호-과잉모성-모자애착’으로 이어지는 삼각 끈의 의도하지 않은 자취가 숨어있음도 간과해선 안된다.
확실히 우리네 아들 선호는 남다른 데가 있어, 출산율을 빠른 속도로 감소시킨 대신 성비 불균형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다.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서른다섯에 단산’했든,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길렀든, 전후 베이비 붐 세대는 자녀교육에 동원 가능한 자원을 집중 투자했다.
한데 아들선호와 과잉모성의 결합은 의외의 반전을 가져왔다.
아들은 모자애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마마보이로,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독립적 커리어 우먼으로 키워낸 것이다.
덕분에 서구 페미니즘의 세례까지 받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선 ‘딸은 이렇게 키워야지 감이 잡히는데 아들은 솔직히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백이 들려온다.
이제 아들 잘 키우는 일이 중지를 모아 해결해야 할 모두의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 ‘아들은 남자답게, 딸은 여자답게’의 규범이 편견에 터한 고정관념으로 드러난 이상, 고전적 의미의 남성성 회복을 외치는 건 시대를 거스르는 주장이 될 것이다.
아들 딸 불문하고 독립심·책임감·추진력·적극적 도전정신이 미덕이듯, 이타심·배려·성실·인내와 끈기 또한 모두에게 길려줘야 한다. 덧붙여
엄마의 영원한 아들로만 키울 것이 아니라, 장차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됨에 필히 요구되는 품성과 능력, 나아가 여성동료와 민주적 파트너십을
유지해갈 성숙한 인격까지 갖추도록 해준다면 금상첨화이다.
(함인희·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두 아들 아빠의 변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정내 자신의 진정한 역활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처럼, 집에 오면 휴식만 한다.
내일 또 전쟁터로 가야하니까....
5천년 역사 이래 자신들이 가장 능력있는 아버지인줄 알지만
이만큼 아무 생각없는 아버지상도 역사 이래 없었다.
혹자는 사회현상을 핑게 대지만 세상을 도자기를 형성하는 물레 회전판으로 비유한다면,
좀 천천히 돌 때도 있고, 요즈음 처럼 엄청 빨리 돌 때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시류를 쫏는 한 흔들리지 않을 날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의 구도에서 살아 온 여자들의 뼈속 깊은 억울함에
대한 항거이다. '모자유착'이라는 미명하에 비록 자기의 자녀라도 억눌러서 반전을 꽤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정리하여 조만간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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