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였지만 혼인은 분명 자신의 선택이다.
예전에 유교문화에서는 부모가 짝 지어 주면 얼굴도 보지 못하고
혼인을 했다고 하지만 귀 동냥을 통해서 생김새와 인품을 대충 듣기는
했으리라 짐작한다.
자신의 자녀와 상대 배우자의 성향을 잘 살펴서 맺어 주기 보다는
집안끼리의 결합 성격이 강한 전근대적인 혼인 방식은 옛 이야기되었지만
이혼이 난무하여 배우자를 고를 자신이 없는 사람 중에 예전
방식으로 회귀를 생각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지어져서 뛰어난 예지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한것 발휘 할 때가 배우자를 선택 할 때 인 것 같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과 자신이 길 드려진 환경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이 두 가지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해서 선택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뭔가 끌림'과 '왠지 편한함' 인데
'끌림'은 내 쪽에는 없는 상대의 장점을 살펴 찾아 낸 것이고,
'편안함'은 자신의 길 드려진 환경과 유사함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을 단호히 거부하는 사람도 간혹있다.
본인의 의지가 강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배우자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부부는 어찌되었건 서로에게 끌리는 장점이 있어서 혼인를 한다.
하지만 같이 살다보면 장점은 서서히 단점으로 변하여 그 점을 고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자기부정을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말수가 적은 남자와 애교있고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 여자가 있다면
좀 무뚝뚝한 면이 있지만 남자가 자기 말도 잘 들어주는 진중함이 매력이 있어 보인다.
남자 쪽에서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고 애교 만점인
그녀가 귀여워 죽을 지경이다.
이런 커플이 부부로 삶을 같이 영위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을 때
서로의 장점이 큰 단점으로 부각 될 때가 있다.
여자의 감성을 도통 몰라주는 답답한 남자와 지칠 줄 모르는 잔소리의 여자로
서로를 다그친다.
자기부정을 하라는 요구이다.
내 경우는 위 예의 반대이다. 내가 말을 더 많이 하고 애교(?)도 있지만
남자라는 성의식에 사로 잡혀서 내가 아내보다 터프하고 남자로서
폭 넓은 관용도 있는 줄 알았다.
아내는 체격도 아담하고 말수도 적어서 그저 얌전한 규수로 알았다.
살다보니 뭔가가 맞지 않은 면이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으로 꽉찬 나는 백번 잘 해주고 가끔씩 똥볼을 차서
잘 해 준 백번이 완전히 무너지는, 손해보는 장사를 거듭하여 몹시도 가슴이 답답했었다.
내 자신을 곰곰히 살펴보니 터프함은 아내보다 완력만 더 쎈 것이고
남들 다하는 직장 생활 해서 돈 좀 벌어다 준 것을 관용인 줄 알았다.
이를 아내에게 맞겨 모든 책임을 덤태기로 지워주고는 폭이 넓은 사람으로 자부했다.
원래 아내는 나보다 선이 굵은 여자였다. 아내도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자라는 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중년의 성호르몬의 변화와는 무관한 본질적인 문제이다.
사십이 훌적 넘어서야 그것을 안 허접함도 있지만 이를 살펴주고 치유 해 주는
사회적인 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태이다. 스스로 이런 문제를 살피며 살아가기에는
먹고 사는데 온 힘을 쏟는 현실속에서 참 어려운 일이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를 닮아가기도 하며 나이 먹음에 따라 의식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그저 연애와 신혼 때를 자꾸 생각하면서 머물러 있으면 현실이 요구하는 바는 그렇지 않은데
의식의 수준은 예전을 맴돌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 '끌림'의 장점과 '편한함'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이를 자신의 변화와 잘 엮어서
서로를 다시 살피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년부부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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