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접대와 접대 받음이 이어져서 좀 더 젋었을 때는 꽤나 많은 술을 마셨다. 어느날 이렇게 술을 계속 마셔 대다간 제명에 죽지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몇년 전부터는 최소한의 접대 술 자리외에는 가급적 피하고 생각이 나면 집에서 아내와 마셨다.
연애시절에 어디서 무었을 하던 꼭 술자리로 마무리를 한 덕에 아내의 술 실력은 나와 대작을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술을 마시지 않은 기간이 있은 후 다시 마시기 시작했을 때는 잘 마시지 못했지만 이내 예전의 실력이 되살아 났다.
아내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셔대다가 기억에 남는 사고를 두 번 친 적이 있었다.
경남 거창에 살고 있을 때였다.
아파트 길 건너에 아내와 가끔가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불타는 멀구내"라는 꼼장어 집이 있었다. 젊은 두 내외가 장사를 하는데 열심히 사는 모습도 좋고 안주 맛도 좋았다.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아내는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면 하루 종일 집에 있기 일 수 였다. 어느날 적적함을 달래 준다고 두 아들을 재워 놓고 오붓하게 둘이서 그집을 찾아 갔다. 그날 따라 가게 내외가 우리에게 여러가지 안주를 서비스로 주어서 정말 기분 좋게 주거니 받거니를 하다가 자정이 훨씬 넘어서 집으로 돌아 왔다.
아이들이 한참 뛰 놀 때라 일부러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었다. 분명히 잠그고 나온 현관문이 삐쭉 열려있는 것이 아닌가?
황급히 열어 보니 현관 바닥에 아이들 신발이 없었다. 신발을 벗는 둥 마느 둥 뛰어서 안방문을 열어 보니 두 아이는 온대 간대 없었다.
술이 확 깼다.
아파트를 돌면서 한밤중에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00아!" "**아!"
실내등을 어슴프래하게 커 놓은 아파트 경비실에 안에 두 녀석이 눈물을 흘리며 나란히 앉아 있었다. 큰아이가 자다가 일어나 엄마, 아빠가 안보이자 동생을 깨워서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돌아가신 애들 할아버지가 아셨으면 경을 칠 일이었다.
경비아저씨에게 고맙고 죄송하다는 말도 변변히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내와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각자 가슴에 담고있는 상처를 달래 주는 방법이었다. 열심히 살아 온 지난 날들이 쌓여서 오늘이 있었지만 선택권이 없었던 어린시절의 아픔이 그냥 추억으로 치유 되기까지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술이 주는 용기를 이따금씩 부렸다.
그중에 하나가 업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업혀서 자라온 오남매의 막내이지만 아내는 딸 다섯에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어 주목 받지 못하는 둘째이다. 아내의 몸이 예전 보다 묵직함이 내 삶의 무게가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내 다리의 부실함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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