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라고 기도를 시작하면 '아버지'에서 뭔가 탁 걸리고, 께름직하다는 성도들이 있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가정을 공의롭게 다스려야 하는데, 현실에서 '아버지'가 그렇지 못해서 문제이다.
새번역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남성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아버지'라는 말을 빼자고 여전도회에서 들고 나왔다.
불공정한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자들을 억압하는 구도와 올바른 아버지상의 부재로 인한 현상으로
앞으로 ‘家母長’으로 권력이동'은 가속화 될 것이다.
역사 이래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 오며 살아 왔다. 수렵과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로
변화되면서 남성 고유의 힘이 무용지물이 되가고 있다. 가령 이사짐도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고
아파트 주거문화는 남성의 잔손질이 필요없게 되었다. 어쩌면 힘을 앞세워 억울하게 살아온
여성들의 한이 하늘에 닿아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바른 아버지상의 부재로 다음세대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러니 모계사회로 갈 수 밖에 없어졌다. 이런 변화를 아들 갖은 부모는 분하고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곰곰히 돌이켜 보면 정작 자신이 이를 스스로 조장하고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음에 대하여 아들에게 앙갚품을 하는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아들을 주장하고, 구속하여 자신의 권력안의 깊숙한 곳으로 끌어 들인다. 모계의 권력에 길드려진 아들은 독립심이 떨어진 상태에서 몸과 나이만 체워서 혼인을 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죽하면 아들이 신혼 첫 날 밤에 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하도 되" 라는 웃기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세상이 뭔가 뚜렸한 이유없이 어려워진 이유 중에 하나가 남성이 여성들을 억압해서 그렇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런 어려움과 부당함의 반작용으로 사회적인 변화와 여성상의 변종을 불러 왔다고 믿는다.
오늘날의 남성이, 남편이, 아버지가, 자기존재감을 돈 벌어오는 것 외에 딱히 내세울 것이 있냐는 것이다. 그것도 얼마나 생색을 내면서 말이다. 자신의 사회적인 경제 활동의 목적은 가정을 이끌어 가기 위한 것으로 이는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이며, 이해하기 어렵지만 큰 권한이다.
이를 통해서 가장의 권위를 더 얹저주는 것이다. 마땅한 일을 하면서 징징거리거나 필요 이상의 위세를 내세우면 권위는 커녕 자신도 어려워진다.
아버지는 집과 가족 전체가 마치 자신을 위해서 있다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모든 권력자들의 속성이다. 자신도 소속원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한시적인 역할자일 뿐이다.
'家母長’으로 권력이동은 너무나 당연한 변화이지만 온전한 상황은 분명 아니다.
가정을 내주신 큰 뜻과 그 안의 거룩함과 가장으로서의 온전한 의식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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