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오 자히르'를 읽고

두 아들 아빠 2006. 2. 26. 21:51
 

 

오자히르를 읽고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로 연금술사에 이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이 책을 블로그 지인으로부터 읽기를 권유받아서 책을 구입했고 많은 인내를 요구했지만 틈틈이 전부를 읽었다.


책의 줄거리

유명작가인 주인공은 종군 르뽀 기사를 쓰는 자신의 아내가 어느 날 사라졌고 아내를 찾아내는 과정에 일어나는 신비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아내와 선이 닿는 미하일 이라는 청년을 통하여 영적인 다른 세계를 보게 되며 결국 아내를 찾았지만 그저 어떤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였다.


책 내용이 담는 철학과 사상

유명작가의 신변잡기를 늘어놓은 과정에서 일반인이 접 할 수 없는, 그러나 늘 동경하고 꿈꾸는 상류 사회를 살짝살짝 보여주면서 작금의 서양소설의 주류가 그렇듯이 성경과 이슬람교 그리고 여주인 모시는 알 수 없는 잡교까지 등장 시켜서 종교 다원주의를 빌린 신비주의가 글 전반에 깔려 있다.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책의 줄거리와는 맞지 않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이야기들은 시간의 여유가 많은 작가는 인터넷을 밤새 뒤져서 찾아 낸 것 같다.


책 내용의 배경

작가인 코엘료는 연금술사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그 이후 자신의 생활전반에 걸쳐서 달라진 삶과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한 고역적인 상황을 그려냈고 상류지식인으로서 참 자유를 추구하는 생각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다.

자유로운 사고라는 것이 고작 이성에 관한 성적인 개방과 결코 성경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서 자기가 필요 할 때 기도와 신을 찾는 태도는 모든 우주를 인간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절대자인 신마저 거침없이 그리고 언제든지 이용하는 현대의 기독교인과 크게 벗어나지 않다.


성경적 차원에 본 내용

책의 맨 서두에 짧은 기도문과 복음서 누가복음 15장 4절이 인용되어있다.

오. 죄 없이 잉태하신 동정녀 마리아여,

당신께 의지하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소서.

                                    아멘.

그리고 주인공의 아내가 다른 이의 임신을 한 사실을 책의 말미에 두었다.

마치 영적인 방황을 한 글 속의 여인이 동정녀 마리아과 같다는 메시지를 수수께끼 마냥

감추어 놓았다. 여기서 ‘죄 없음’이란 마리아의 죄 없음이 아니라 인간의 원죄 없이 잉태된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나 수수께끼를 냈는지 모르겠다.

고작 ‘자히르’라는 낱말하나를 겨우 인용한 것을 보면 이슬람에 관하여는 깊은 지식은 없는 듯하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표방한다는 사실은 알고나 인용을 했는지 작가에게 묻고 싶다.

이뿐 아니라 책 줄거리 곳곳에 성경을 인용하였다. 소설작가에게 종교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용을 하려면 제대로 하여야한다.

성경은 신비주의가 아니고 아주 수준 높은 하나님의 진리가 있다.

주일학교 학생 수준도 되지는 못하는 작가의 성경적인 이해로 마구잡이식 인용이 통한다는 것은 함량 미달의 작금의 서구사회의 기독교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총평

세속적이고 관념적인 인간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노력이 엿 보이기도 했으며. 현대인이 안고 있는 정서적인 문제에 관하여는 딱딱한 심리학적 분석이 아닌 소설 속의 작가라는 신분과 일반인의 평범한 삶 속에서 끄집어내어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남미 태생의 작가가 소설의 주무대를 파리로 선정 한 것을 보고, 문맹률이 24%에 달하는 작가의 나라와 서구유럽의 정서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유럽을 무시한 것인가? 아니면 사고의 영역이 평준화 되었다는 것일까?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관하여는 안타깝게도 내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가치 평가나 소감은 할 수 없다. 그게 나의 한계이며 따라서 작품을 보는 사고의 균형감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나와 마찬가지로 작가도 이런 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종교를 마구잡이로 인용을 했으니까 말이다. 이런 류의 글을 다루는 작가의 의도 중에는 종교에 속하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정신적인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나 과연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의도대로 참 자유를 얻은 사람이 몇 사람이 될까 의문이다.

늘 일탈을 꿈꾸고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위안이 됐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