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가정의 달 5월의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보고

두 아들 아빠 2006. 5. 16. 17:56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개혁주의 교리를 완성시킨 존 칼빈은 연극이란 영혼을 황폐케 하는 것이라 규정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배우가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과 혼을 담아내야 하고 그런 설정된 인물의 가증의 극을 보아야 하는 관객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날 실제처럼 피가 난무하고 비록 악인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서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과 영화를 그가 보았다면 뭐라고 하였을까?

만일 그가 이 영화를 본다면 해악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사진은 시사회를 앞두고 방송국과 가진 인터뷰를 제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거나 다녀본 사람과 그 부모는 물론, 아직 어린자녀가 있거나 예비 부모들이 볼만한 영화입니다. 극중의 남자 주인공인 광호(박용우)는 음악에 문외한으로 나와서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전혀 소외감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서’를 받았습니다. 집의 자가와 전, 월세 표기는 물론 집안의 가재도구까지 써 넣어야 하는데 아마도 파이노가 맨 처음이었고 그 뒤에 전화가 있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소한의 기본교육으로 이만큼 잘 먹고 잘 살게 된 우리 부모세대는 어릴 적 피아노는 문화적인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녀를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부모의 대리만족 중에 피아노 레슨만한 것이 없습니다.


섹스와 욕설 그리고 폭력, 잔혹이 넘쳐야만 지루함 없이 볼 수 있다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영화입니다. 예전에 최민식이 주연한 ‘꽃피는 봄이 오면’ 이후에 음악영화가 거의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이제 첫 걸음마를 뗀 이 영화는 마치 어린아이가 험난한 세상 속으로 헤집고 나오는 듯하여 안타까움이 드는 영화입니다.

대중의 의식 수준을 단번에 끌어 올릴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가 극장가에서 조기에 내려지더라도 한국 영화사에 밀알이 되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우리가 제과점에서 만든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한 알의 밀 씨앗을 생각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많은 영화 서평에서 극중의 지수(엄정화)를 실패한 피아니스트로 규정짓는데 다른 관점으로도 보아야 합니다. 극중의 인물도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책하지만 그건 오늘날 성공 지상주의가 빚어낸 산물입니다.

우리는 대다수가 이루고 사는 평범함에 의한 ‘보통의 편안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실패한 피아노 ‘전공자’에게 자녀를 맡겨서 성공의 여부를 타진하는 아주 우매하거나 아니면 한 없이 너그러운 부모들입니다.


절대음감을 가진 아이를 통해서 자기만족을 가지려는 피아노학원 여선생은 이른바 하우스음악회에서 비로소 경민(신의재)의 천재성을 인정받습니다. 큰 선생이 필요하다는 음대교수인  친구의 말에 그 아이 부모는 의사이고 "이제야 제대로 된 선생을 만났다"라고 했다며  공허로운 거짓말로 자신을 내세우지만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성공한 음대교수와 홀로 된 천재적 기질을 타고난 아이의 중간에서 지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던 과정은 한 개인의 열심이 얼마나 하잘 것이 없는가를 보여줍니다.

지수는 가족의 희생과 지지를 받아 자기 열심까지 다 했지만 현실의 음악 세계에서 낙오되었다고 자책하고, 홀홀 단신 된 아이는 입양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성공을 이룹니다.


 자녀는 길러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홀로 남은 할머니마저 돌아가셨지만 세상과 하늘은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가족 동반자살을 하는 안타까움은 그 이면에 자녀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서 영혼까지 유린하는 살인 행위입니다.

결손가정의 후천적 자폐증상이 있는 아이와 유학을 가지 못해서 좌절된 피아니스트 그리고 피아노라는 문화에 무조건 끌림을 받는 피자집 남자가 어울려 낸 휴먼드라마입니다.

과거 혈연관계에서 오는 가족 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잔잔하지만 큰 감동을 불러 오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수많은 어머니는 나와도 아버지는 없습니다. 아버지 부재현상이 다음세대에 어떠한 영향과 사태를 불러 올지 간단히 예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제 신의재군은 아버지가 양육하고 길러온 아이입니다.

영화 촬영과 인터뷰 때 예기치 못한 말을 쏟아내서 주변과 스탭들을 놀라게 한 일은 아버지의 보살핌과 사상을 어려서부터 받아서 나온 사실이라는 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영화의 아역 주인공인 신의재군은 피아노를 배운지 9개월 만에 전국단위 콩쿨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신의재군의 부모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예술적 ‘끼’는 타고 난 듯합니다. 아이의 이모는 이름 석자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국악인 입니다. 그렇다고 그 분이 조카의 영화 캐스팅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그저 홈드라마 정도로 알고 비디오가 나오면 봐야지 한다면 큰 것을 놓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관객을 피아노협주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로 초대합니다. 극장의 사운드는 이 웅장함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출력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연주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만발한 가정의 달 5월에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나와서 기쁩니다.

 

주: 스포일러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혹 그런 것이 있었다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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