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 2.

두 아들 아빠 2006. 8. 11. 18:22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거나 대표성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불과 50~60년 사이에 나라가 해방되고, 동족간의 큰 전쟁을 치루고, 삼국시대도 아닌데 두 번씩이나 총칼로 정권을 잡고, 보리 고개에서 마이카시대를 연,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단기간의 큰 변화로 인하여 우리사회는 세대의 구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선진국은 자본주의를 200년 넘게 영위했고 저개발 국가는 우리의 1년을 10년처럼 더디게 변화되어 따라서 그들 나라에는 우리처럼 극적인 세대구분은 없다.

 

대통령 욕하기가 ‘신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원인과 누가, 왜 욕을 하는가를 세대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50~60대 이상은 ‘산업화의 선두 주자’


 

 

 

 

 

 

 

 

 

 

 

경제관념의 왜곡-

산업화에 성공한 이들은 나름대로 신념과 의지와 성취감이 있다. 그래서 어떤 정권이던 모든 잘못은 용서하여도 경제가 어려운 것만은 용서 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자신들이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우뚝 세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이끌어 왔다고 믿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직도 우상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 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우리의 많은 노력도 있었지만, 세계경제의 흐름을 무시 할 수 없다.

 

1974년 1차 오일쇼크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선진국에서는 원가 절감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는 인건비 절감으로 이어졌으면 많은 부분의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는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이다. 값싸고 질(?)좋은 인력이 많은 우리나라로써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경공업에서 중공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 왔으며, 돈이 있어도 노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우리 국민성은 세계경제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다.

 

1979년의 2차 오일파동은 그동안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중화학 공업에 매진하던 한국경제는 결정타를 맞은 것이다. 당시 공장 가동율이 50% 미만이었다.

월남에서 피를 흘려서 번 돈과 열사의 사막에서 번 오일 달러도 소멸되고, 1979년 180억불의 외채가 1985년에는 500억불로 늘어났다.

그렇게 칭찬하던 박정희의 신화는 여기가 결말이다.


1997년11월3일의 IMF가 완전히 끝났다고 애써 말하고 싶은 자들은 이를 저지른 한나라당과 이에 관한 예보를 전혀 하지 않은 한 통속인 언론들이다.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IMF의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자들이 나라경제를 이야기하는 자체가 난센스이며,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는 사람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치매로 따지면 아주 심각한 경우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자고?

 

작금의 한반도는 단군 이래 이토록 잘 먹고 잘 살은 적이 없었다.

전통적인 농업국가인 우리나라는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이들 세대가 어렸을 적에 하루 세끼를 다 먹기가 어려웠다. 나라 전체 가구 수의 1/3인 560만 채의 아파트와 천만대의 자가용, 가족의 저녁 한 끼 외식비로 쌀 반 가마 값을 너끈히 지불하는 세대가 더 이상 뭘 어떻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늘 입버릇처럼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정보 취득의 문제-

이들은 정보의 대부분을 메이저급 신문을 통해서 얻고 있다.

과거 정당하지 못한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이들 언론들이 현 정부를 온전하게 평가 할 리가 없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읽어야 하는데, 세뇌교육을 시키듯이 갈겨대는 논조와 마치 바닷물을 퍼먹는 개념 없는 경제관념과 합쳐져 상식적인지 않은 논리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정신병이 아주 색다른 관념이나 희한한 것이 아니다. 비상식적인 요소가 반이 넘으면 정신병이다.


권위주의의 폐해-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반독재 투쟁의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건 군사 독재정권과 숨을 같이 쉬면서 정치권의 반을 찾지 하고 정치 기득권으로 공생공전하며 살아온 세력이다. 군사정권이 음험한 권력의 힘으로 억압을 했다면 이들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가신의 힘으로 버텨왔다. 두 세력 모두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권위주의를 기본으로 하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에 반하여 노무현대통령에게서 권위주의란 찾아 볼 수 없다.

이제는 과거 권위주의에 옥 매였던 의식에서 완전히 풀려나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서 의미 없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불만과 욕이다. 이를 ‘스톡홀롬 신드롬’이라고도 하는데 자신을 인질 삼아서 억압했던 테러범에게 느끼는 묘한 연민 같은 것이다.

고도경제성정의 첫 과실을 따먹은 세대로, 변화되는 경제 페러다임의 부적응과 권위주의의 퇴조를 현 정권에 모두 토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는 전반적으로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극악스러운 욕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는데 욕을 하는 이유를 물으면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다.



386의 40대 ‘은혜 받은 세대’

 


 

 

 

 

 

 

 

 

 

 

 

 

 

 

80년대 연대 앞 시위 장면(당시 악명을 떨친 백골단이 뒤에 포진하고 있다.)

 

앞선 50대 이후는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산업화의 주역으로 나중에 유익을 받았다면 40대는 앞선 세대가 닦아 놓은 평탄한 길을 앞만 보고 내 달려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 일이요, 오늘날 젊은이들이 알면 화날 일이지만 대학의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이 취직이 되었던 세대이다.


80년도 중, 후반부터 20년 가까이 농촌의 모내기 때 부엌의 부지깽이도 아쉽다는 식으로 일 할 사람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던 경제 호황기였다.

오늘날 엄청나게 각광 받는 교사와 공무원이 하찮게 취급되는 시절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이세대의 교직과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 그 설움을 잘 기억하고 있다.

오늘날의 뒤 바뀌진 자신들의 위상으로 세상에 쓴 웃음 보냄으로써 보상을 받고 있을까?


마이카 시대를 연 세대이고, 그동안 쌓아 온 부를 가지고 학교보다 학원을 더 키운 세대이다. 그래서 중학교 1~2학년 영어시험에서 한, 두 문제 차이로 반 석차가 10등 이하로 곤두박질치게 하였다. 90점 이하는 등수를 말 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이런 숨 막힘에 질려버린 대다수의 아이들이 공부를 일찌감치 포기하여,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확연히 구분 지어진다.


40대의 정체성은 ‘생산성의 시기’라 하여 그런 면에서는 50대 이후세대와 더불어 성취감으로 따지면 상당히 고무적인 상황이나, 독재에 항거한 의식은 퇴색되고 최고의 부를 맛 본 세대라 그 부의 세습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그래서 기러기 아빠의 원조를 자처하면서 온 몸을 받쳐서 자신의 열심을 내고 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자기들 보다 윗세대인 전통적인 기득권을 해체시켜서 자신들에게 부를 나누어 줄지 알고 찍은 사람도 있었고, 애초부터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은 나이는 사십 먹은 사람이 생각은 50대 이상인 조숙한(?)한 사람들이었다.


이 정권에 욕을 해대는 사람들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에 재미를 본 사람들이다. 국민의 정부을 거쳐서 7~8년이 지나서 사회구조와 자신의 변한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막연히 그 시절을 동경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의 불만을 노무현대통령에게 쏟아 붓고 있다.



30대정체성이 불투명한 세대’

 

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호황 속에서 두발 및 교복 자율화 조치,6·29 선언을 기점으로 한 껏 ‘자유’를 누리며 살아오다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으로 방황한 세대. 10년전 ‘신세대’란 이름으로 기성세대와의 차이를 부르짖던 세대다. 이들이 어느새 전체 인구의 17%,경제활동 인구의 24%를 차지하는 소비와 생산의 주체로 성장했다.

(국민일보 2005.10.30일자 쿠키뉴스 인용)

 

자신들 보다 앞선 세대가 권위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래 세대에 써먹을 수 없는, 사회 변혁의 중간 틈에 끼어서 느끼는 좌절감이 있다.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부모세대가 무조건 내 몰아 생각 없이 대학은 나왔지만 그들이 사회에 막 진출할 무렵에 IMF가 터졌다. 취직이 안 되어 고등 놈팡이가 되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문턱에서 방황을 하거나 현재 자신의 위치에 불만을 품고 있다.


386세대처럼 길거리에 있는 돌을 던져서 불의한 권력에 항거 해본 역성의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사회가 온전한 구조 속에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대 속에서 삶을 내딛은 세대이다. 아버지 세대의 권위의식을 그대로 지니고 결혼 생활을 힘들게 하는, 어찌 보면 권위주의의 속죄양 같은 세대이며,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가장 많이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불안감 속에서는 안정감이란 찾을 수 없으며 진정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진실에 귀를 기우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실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과 시대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으며, 아주 새롭고 뜨악한 범죄인 ‘뚜렷한 이유와 대상 없이 행하는 살인’을 저지르는 유영철(36)과 정남규(37)가 모두 삼십대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에 관한 무관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들 세대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그리 크지 않지만, 앞 세대가 맹목적으로 갈겨 대는 현 정부와 노대통령에 관한 욕을 반론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서 차라리 외면을 하는 것 같다.

인터넷에 동회 모임을 주도한 세대이며, 현실 도피주의적인 성향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들 세대에게 책임을 다 물을 수를 없다. 이들의 아버지세대는 ‘산업화의 선두주자’로서 성공을 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믿고, 실패한 사람들의 심성은 패악하기 그지없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심정이 온전할 리가 없다. 본격적인 핵가족 사회에서 아버지 부재 현상의 최초의 심각한 피해자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되는 40대에는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이 사회 전반에 깔려서 힘을 발휘한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