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두 사례를 읽고, 부부가 엇비슷하면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부가 성격이나 기타 생활패턴 등이 같으면 도통 재미가 없다. ‘따분’ 그 자체이다.
평범함이 주는 행복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평온함이 아닐까?
평온함을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다. 큰일을 당해야 하나님도 찾고 예전에 고마움도 안다. 그때까지는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는 허접한 자신의 힘을 믿고 사는 게 인간이다.
교회에 나간다고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뭔가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게 채워지지 않아 늘 안타까움이 있다.
자신의 힘을 믿는 경우가 그렇다.
부부는 달라야 한다. 그래야 둘 이 한 몸이 되어서 사명을 이루어 갈 수 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기가 막히게 찾는 게 연애 감정이다.
내게 없었던, 그래서 그게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좋았던 점이 점점 싫어지는 게 갱년기라고 한다. 이를 호르몬의 이상분비로 돌리는데 그것은 남자의사들의 이야기이다. 우울증은 사랑의 부족이며, 사랑은 억울함이 있는 한 생성 될 수 없다.
여성들의 억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본다.
1) 돈
이 세상의 부인들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여성들의 억울함은 돈이 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취업주부는 이런 면에서는 좀 자유롭다.(더 억울하게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 그렇다고 전업주부에 비하여 더 행복하다거나 권리가 더 주어 진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일과 가사노동, 자녀 양육에 치어서 비명을 지른다. 이 모두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으면서 힘만 들지 정작 자신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업주부의 경우 경제권 쥐고 있으면 그래도 좀 낫다. 나름대로 아끼고 살림하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돈 관리는 남, 여를 구분 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 중에서 실력이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하면 된다. 그런데 서로가 낫다고 한다. 자기와 상대를 진정으로 살피는 일은 지혜로는 안 된다. 한 몸이라는 것을 둘이 같이 느껴야 한다.
여성들이 '가정과 돈'에 관하여 두 가지 오해를 하는 면이 있다.
첫째는 남편이 힘들게 돈을 벌어 오는 행위로 존중을 하는 것이 아니고, 워낙에 존중해야 하는 존재이다. 남자의 경제 활동은 권위에 ‘권능의 왕관’을 씌어주는 일이다. 이를 남자들이 내세워서도 안 되고, 힘들다고 찌질 거려서도 안 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성경은 남자는 가시덤불의 땅에서 땀을 흘리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단정한다.
원래 그렇게 지어졌다면 남자들은 덜 억울할까? 아니면 더 억울할까?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명을 주시지 않는다. 가정을 모든 면에서 어렵게 하지 않게 이끄는 일은 '의무와 권능'이 하나로 된 남자들의 기본적인 사명이다.
둘째는 남자가 벌어 온 돈이라서 자신은 그 부분에서 권리가 좀 떨어진다는 의식이다. 자신의 위해서 돈을 쓰면서 일종에 미안함도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남편이 벌어 온 돈은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이를 처음부터 남편이 아내에게 확실히 인식을 시켜주고, 지지를 해주어야 한다. 자신의 아내가 파출부가 아니라면 말이다.
남자는 자기가 벌어 온 돈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쓰면 아내는 어찌 할 도리 없이 속으로만 끙끙대며 억울해 한다. 이는 당연히 주장 할 것을 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편이 쓰는 돈이 마땅치 않으면, 살림에 지장이 없는 한도라도 강력하게 제지하고 자신의 주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살림비를 아껴서 뒷돈을 만들면, 자신은 정말 못 돼먹은 파출부로 스스로 전락하는 짓이다. 그렇게 모아 놓은 돈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늘 안절부절 한 마음만 키우는 것이다. 가령 남편이 갑자기 부르면 깜짝 놀라는 반응들이 그런 것이다. 모아 논 돈의 액수만큼 남편과의 사이는 더 벌어져 있는 것이다.
시댁과 돈
요즈음은 드문 예이지만, 시댁으로 무작정 흘러들어가는 돈 때문에 억울해하는 여성들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퍼다 주면 더 열 받게 된다.
그러나 시댁에서 흘러 온 돈은 당연하게 받는다.
십계명에 ‘부모 공경’을 분명히 말하지만 이에 반해서 부모 자신도 엄격한 인식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 공경은 유교의 개념과는 다르다.)
‘자식의 덕을 보려는 것은 도적의 마음이다.’
나이 먹은 부모는, 그동안 쌓아 둔 돈이 없다면 절제되고 근검한 생활을 해야 한다. 돈을 남겨 두지 않으심은 하나님이 그런 생활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자식의 돈으로 젊은 시절에 잘 나가 던 대로 하는 짓은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다.
반대로 돈 푼께나 있는 시부모가 돈을 미끼로 새 가정을 주장하려 하면, 여성은 사전에 단호히 끊어야 한다. 이 유혹에 넘어 가면 결과는 좋지 못하다.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야한다. 독립은 경제적인면도 중요하다.
시댁에 돈이 있으면 남편은 열심히 살지 않는다. 이게 문제이다.
돈 있는 부모들 중에 마치 진리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자식에게 절대로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 이런 말을 교회에서 장로들과 목사가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 한다면 그곳은 더 이상 교회라고 하기 어렵다.
이 말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죄악 되고, 허망 된 말인지 모르고 하는 것이다.
독립한 자식의 영혼을 돈으로 얽어매려는 의도와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은 돈 밖에 없다는 말이다.
돈이 인간에게 주는 사기성은 영혼의 안정감을 줄 거라는 유혹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돈을 존속시키는 이유는 돈이 갖는 공평함 때문 같다. 돈을 갖은 자나, 없는 자나 그것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과 죽을 때 가져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에 관한 억울함은 내 자신이 만든 면이 더 많다. 내 욕심을 다 부리지 못한 억울함이다. 이에 관하여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다음은 시댁입니다.-
'하나님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의 우울증 이야기 7. (사랑) (0) | 2006.09.22 |
---|---|
여성의 우울증 이야기 6. (억울함의 원천 ‘시댁’) (0) | 2006.09.21 |
여성의 우울증 이야기 4. (케이스 1,2) (0) | 2006.09.20 |
여성의 우울증 이야기 3.( 여보! 난 당신만 믿어!) (0) | 2006.09.18 |
여성의 우울증 이야기 2. (능력 있는 여자) (0) | 2006.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