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대학 입학 논술이 우리사회에서 맞지 않는 이유

두 아들 아빠 2006. 10. 30. 15:47

서울대 전 총장인 정운찬씨가 '우수한 원자재론'을 들먹이며 발의를 했고, 이어서 친일 후손인 이장무 현 총장은 '논술은 나의 소신'이라고 일갈을 했다.

학생을 원자재에 비유하여 서울대 총학생회으로부터 인격 모독이라는 항의와 질타를 받은 정 총장은 임기를 온전히 끝내고 그만 두었다. 그 뒤를 이은 이장무는 더 가관이다.

 

과연 학생의 변별력을 위한다는 논술이 필요한가 의문이다.

 

(윗 그림은 '제주의 소리' 자유게시판에서 펌)

 

첫째 만19세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원 할 수 있는 수준의 논술은 어느 정도인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사회인으로서 기초적인 소양을 요구한다. 그들에게 어떠한 주제에 관하여 심도 있는 논리를 요구하는 자체가 무리이다. 어설픈 논리의 확신은 도리어 사고에 화가 될 수 있다. 이를 인정한다면 논술은 변별력이 없는 획일적인 아주 긴 주관식문제로 또 다시 학생들을 괴롭히는 짓이다.

논술은 적어도 대학교육 이상에서 요구되어야 한다.

내신+수능고사+논술을 통과한 학생들에게 대학 자신들은 4년동안 비싼 수업료 받고, 뭘 가르치려 하는지 말해야 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어린 학생에게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 할만한 사회적인 기반이 조성 됐는가?

논술은 어떤 주제나 사회 현상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다. 사회 통합은 고사하고, 분열되고 '의'가 바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획일적인 사고나 이상한 사회 현상에 저항 할 수 없는 도구로 전락 될 수 있다. (교육계에 친일파의 자손들이 자숙하는 태도 없이 판을 치는 이 마당에 무슨 빌어먹을 논술인가?)

 

셋째 논술은 또 다른 본고사의 부활이 아닌가?

최고의 교육 기간으로써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힘을 쓴 것이 아니라 서울대와 일부 유명 사학들은 교육의 서열화를 끊임없이 획책 했다. 10년 넘은 교재로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수두룩하다.

본고사 폐지는 그 폐단이 심각해서 없앤 것이다. 패지 이후에 심각성이 해소되고, 더 나아진 여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넷째 대학이 논술을 제대로 평가 할 수 있는 능력과 공정성을 담보 할 도덕성이 있는가?

수백, 수천명이 작성한 논술원고를 누가 읽어 보고 평가를 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절대적인 인력부족과 함께 자질이 문제이다. 제대로 된 대학교수라면 많은 학문 중에서도 일부의 극히 좁은 분야에 정통한 학자들이다. 이들이 고등학생의 논술을 온전히 평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며 오만한 생각이다.

사립대학들은 기업도 수용한 사외 이사 제도에 극열 반대하고 있다. 둘 다 투명성을 담보하지는 취지인데 사학은 극열 반대하고 있다. 이들에게 공정과 도덕을 기대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러운 에피소드

기득권자들이 소수 엘리트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이유는 자신들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그 그릅에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무사 사령관과 합수부본부장을 했을 때, 그의 큰아들은 연세대에 버젓이 편입학을 했다. 이의 말을 빌리면 어느날 시내에서 친구들과 당구를 치다가 경호원들이 찾아와서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선배들이 데모대 앞장에 늘 세우자 그의 엄마인 이순자씨는 아들을 서둘러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를 일컬어서 '순자 삼천지교(三遷之敎)'라 한다.

 

소결

얼마 전 권위 있는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서강대도 교직원 자녀의 부정 입학 사건이 일어났다. 하물며 일반 사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믿으라는 것은 억지이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다며 자율권을 달라는 뒷면에는 협잡이 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선발권을 가져서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교육의 서열화를 경계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정한 경쟁 구도 같지만 항상 뒷문을 열고, 닫으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권력이다.

논술이 정당성을 갖추려면 위의 네가지 문제가 선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을 공교육에 붙잡아 놓는다고 내신을 강화하고는 논술이라는 사교육을 또 다시 부추키는 짓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을 다 크기도 전에 잡을 작정인가?

 

위 그림에서 정운찬과 이장무 총장은 이렇게 논리를 전개 해야 합니다.

 

1. 대학교육의 전반적인 허접함

2. 철밥통의 교수들

3. 강사들의 피를 빨아먹는 대학구조

4. 최고도 아니면서 최고라는 자만감

5. 교수들이 연구를 하기 보다는 늘 방송과 정치권을 기웃 거리는 거지 근성

6. 친일이 부끄럽지 않은 뻔뻔함

7. 교수보다는 교직원의 지지가 더 유효한 총장 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