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중년들에게

두 아들 아빠 2006. 12. 15. 11:02
불륜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온전히 받아야 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의 경우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춘기 시절을 전후로 성에 대한 억압이 심하거나, 온전한 이성 교제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 그런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일종의 꼭 치 루어야 할 홍역 같은 존재죠. 자신의 자녀가 이성 교제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먼저 자기감정이 요동을 친다면 그런 케이스입니다.


세 번째로 혼인 생활에 있어서 자신이 바라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부족감에서 올 수 있습니다. 내안의 열정이 채워지지 못함에 대한 갈급(渴急)이죠.


여성들은 사랑과 존경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여중생이 남선생님을 사모하는 것은 그런 혼돈이며, 이후에 사회에 진출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존경의 대상이 달라지면 태도가 싹 바뀌게 되죠. 이런 여성의 모호성을 이용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를 사칭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입니다. 그 안에 걸려들기 전에는 누구나 비웃습니다.


반면에 남성의 경우는 나이를 들어가면서 모성애와 이성의 사랑을 일체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내에게 받고 싶었던 모성애를 그런 기질이 다분한 여성에게서 찾는 것이지요. 남편과 바람을 핀 상대가 의외로 후줄근하면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폼 나는 딱지를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소유욕입니다.


사회생활과 일상에서 교제의 폭을 넓혀 가다보면 끌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순전이 끌림에 대한 관심입니다. 자신에게 부족하거나, 갈급하던 것이 충만한 상대를 만나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끌리는 일이죠. 일정한 틀 안에서 교제를 한다면 해결이 되는 일인데, 대게 음습으로 흐르는 게 우리사회입니다. 우리사회가 개방적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성도의 올바른 교제를 제시하지 못하여 교회 안에서도 불륜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불륜에 관한 오해!

중년에 불륜의 사랑이 삶에 불꽃을 다시 피어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지극히 퇴행적인 사랑입니다. 절대 부족했던 유년기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몸부림입니다. 마땅히 채워져야 할 분량과 시기를 놓치면 언젠가는 부족한 만큼 꼭 채우려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불륜의 마음은 ‘사랑하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받고 싶었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내 식어 버리는 것이 불륜입니다. 애초에 받을 수가 없는 사랑입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배냇저고리를 억지로 끼워 입는 일입니다. 일전에 여성들에게 대유행했던 아주 작은 웃옷은 퇴행적인 사랑을 받고 싶은 심리 표현입니다.


전국 3만개의 러브호텔의 수치를 분석하여 성인의 1/4이 불륜을 저지른다며 대한민국을 ‘불륜 공화국’이라고 말하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혼자가 애인이 없음을 능력의 문제로 몰고 가는 짓은 불륜을 저지른 소수의 사람들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조작일 뿐입니다.

매매춘은 불륜도 사랑도 아니며 그저 방사(放射)일 뿐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꿀 지는 모르지만 실행에 옮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감성이 판치는 사회가 불륜을 부 추키고 있습니다. ‘솔직함’이라는 이유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이 앞세우는데, 인간의 본성이 죄악 됨을 안다면 솔직함이란 별 값어치가 없습니다. ‘솔직’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만 써야 합니다.

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인상을 찡그리며 남의 인사도 받지 않는 사람은 솔직함이 아니라 ‘배려’라는 말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입니다.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 뻔뻔하게 불륜을 저지릅니다.


자신은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상대가 관심을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쪽이 상대를 얼마나 잘 읽고, 짚어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내안에 허점을 자책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는 ‘작업의 선수’였으니까요.

이런 경우는 그냥 슬픈 영화 한 편을 보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영회를 또 보려고 극장 앞을 서성이면 이미 불륜의 중독입니다.


사실은 불륜적인 생각이 아닌데,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현대사회가 얼마나 성에 관한 죄악 된 습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좋아하는 이성을 바로 섹스로 결부시킨다는 것입니다. 주로 남성들이 자기 생각대로 여성을 그런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애써 지우려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런 내 감정과 상대를 분석해야 하는데,

상대의 어떤 점이 나를 끌리게 했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무작정 쏠리던 감정에서 좀 벗어 날 수 있습니다.

내안에 부족함이 상대에게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상대에게 이를 칭찬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대게는 이를 표현조차 못합니다.

내안에 부족함이 들어내어 보이고 싶은 않은 치부라고 생각하기에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마치 피가 동맥을 흐르듯이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멈춘 기간이 길수록 기형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게 중년의 불륜입니다. 이는 마땅히 해야 할 이웃과 교제와 사랑이 없어져서, 그 대가를 변형적인 사랑으로 치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현관문은 중세 영주의 성문보다도 더 굳건합니다. 다 자기 자신을 믿고 사는 마초가장들 때문입니다. 이는 이웃사랑의 큰 장애입니다.


내가 불륜을 하는 동안 온전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내 자녀가 나처럼 또 불륜을 꿈꾸며 헤매는 중년이 된 모습을 그린다면 그 따위 짓은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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