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십자가 금목걸이 계 . 믿음은 보험이다?

두 아들 아빠 2007. 2. 1. 11:48
 

십자가 금목걸이 계

성경에서 삼위 하나님 말고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말씀 외에 어떠한 것도 믿음의 표증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심지어 성경책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어 그 말씀의 효력이 있는 것이지, 책 자체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미국법원에서 증인에게 증언에 앞서 성경책 위에 손을 얻고 선서를 시키는 일은 기독교 사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미신행위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하면 안 된다. 사도신경은 예배 전에 믿음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이를 공표하는 것이며,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로마시대에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하는 것은 최악의 형벌이었다. 그 빌어먹을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예배당마다 꼭대기에 빨간 네온이 들어오는 십자가를 높이 세우고 있다. 이런 일을 오래 해왔기에 안하면 이상한 것이 되었다.

만일에 에수님이 화살이나 창에 찔려 돌아가셨다면 그것을 세웠을 것인가?

후세인처럼 교수형에 처했다면 밧줄을 매달을 것인가?


인류의 죄사함의 대사역의 의미를 기려야지 예수님을 죽인 형벌기구를 금으로까지 만들어서 목에 걸고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자기 부모가 6.25 전쟁 때 가족을 살리고, 인민군의 따발총에 돌아가셨다면 금으로 된 따발총을 목에 걸고, 죽창에 찔려 돌아 가셨다면 금 죽창을 매달고 다니는 짓과 똑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 사형 틀은 당시 로마의 최악의 형벌이었지만, 디자인 하나는 알아주어야 하는가?


교회에서 마음이 맞는 아줌마끼리 십자가 금목걸이 계를 조직해서 달고 다닌다.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말려야 할 목사마저도 돈도 내지 않고 맨 처음으로 얻어 달고 다니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출 20장 4∼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믿음은 보험이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성도는 교회에서도 우러러 본다. 그 반대는 위축감을 갖는다.

그래서 잘나가다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교회를 나오지 않거나,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잘 먹고 잘사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고, 그 반대는 벌을 받은 자가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지켜가다 보면 때론 어려움도 당하게 된다.


자기 아상을 내려놓지 않으면 믿음은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자기 성을 굳거니 지키면서 진정한 믿음의 길로 갈 수 없다. 이는 결국 자기 힘을 믿고 그 위에 더 힘을 올리려는 짓이다. 그런 자들에게 믿음은 보험이며, 보기 좋은 악세사리다. 그래서 좀 크거나, 폼 나는 교회를 골라서 다녀야 한다. 이왕이면 아이들 프로그램이 훌륭한 교회가 더 좋다고 골라 다닌다. 그래서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될 뿐이다.


대전에 있는 개그맨 목사는 설교의 제목이 ‘준비하는 삶’ 인가로 기억하는데, 마치 보험회사 외판원처럼 성도들 보고 보험을 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목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보험은 교회에 들라고 해야 한다.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능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을 지지하고, 유지시켜주는 면도 있다. 혼자된 여인은 그 친족이 먼저 보살피라 하셨다. 교회에 부담을 주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교회가 돌봐야 한다고 하셨다.


가령 부모가 사고를 당하여 자녀들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교회가 보살피는 일이다. 교회가 이런 측면을 가지고 있으면 권위는 자연히 설 일이다. 부모는 세상 삶에서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며, 자녀들도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다. 돈이 모였다고 예배당을 때려지을 일이 아니다. 누가 들어도 좋고, 훌륭한 제도를 이루지 못함은 교회가 그만한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