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부모와 자녀를 갈라놓는 교회. 거룩한 성가대?

두 아들 아빠 2007. 2. 2. 09:22
 

부모와 자녀를 갈라놓는 교회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아이들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충실한가가 큰 비중을 찾지 한다.

부모의 허접함을 교회의 권위에 아이들을 맡기려는 부모의 처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자신이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주일학교 교사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다는 것과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그저 말썽 없이 주어진 시간만 때우기에 급급하다.

교회건물이 자꾸 커져 가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부모와 자녀를, 남자와 여자를, 중고생과 대학생을 갈라놓고, 분리시킬 공간이 필요해서다. 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일이다.


한 주 내내 서로 바빠서 저녁식사 한 번을 같이 하기 어려운 요즈음, 주일 날 교회에 가서도 부모와 자녀가 따로 떨어져 지낸다. 공 예배에 부모와 자녀가 따로 예배를 들이는 의식은 전형적인 한국적인 풍속이다. 실생활에서는 전혀 거룩함이 없는 부모들이 예배시간에 가증스럽게도 거룩함을 보이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이 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아이들 수준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하면서 예배를 들이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 부모의 말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집단으로 모아 놓고 뭘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믿음과 기도는 처음에 부모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상한 인격이 되기 싑상이다. 이들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면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과 찬송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맞은 천연두 주사의 효과가 평생을 가는 것과 같다. 교육도, 믿음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자신은 무엇으로 부모 노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거룩한 성가대?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들어 노래로 찬양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전에는 제사장으로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성가대가 있었고, 회당에는 말씀 중심으로 단순하여 성가대는 없고, 시편을 노래했다고 한다.


예배 때 부르는 성가를 ‘예전 찬송’이라고 한다. 이때의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들어내는 곡이어야 한다. 찬송가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고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저 인간들끼리의 감성을 증폭시키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자기들 삶에 이용해 먹으려는 가사마저도 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부를 뿐이다.

찬송가는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지 못한다.


오늘날 교회에는 성가대라는 것이 있는데, 옷도 마치 천주교의 미사 복을 흉내 낸 이상한 복장을 착용하고, 그들만이 거룩하게 회중 앞에서 찬송가을 부른다.


중세 때는 대중이 음악교육을 받기가 어려웠다. 조선 말기에 들어 온 기독교도 교육의 기회가 널리 주어지지 않아서 성가대를 조직 했는지 모르지만, 고학력 시대에 음악교육을 받은 한국에서 우월감과 차별의식이 있을 수 있는 성가대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이는 개혁교회를 자처하는 기독교에서 추구 할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은 노래방 문화 때문에 누구나 가수 뺨치는 실력을 소유하고 있어서 따라서 더더욱 필요 없다.

찬송은 회중 모두가 함께 불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