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 기본 - 승화

두 아들 아빠 2007. 3. 3. 17:10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살펴할 것 중에 위 세 가지의 구분이 있다. 어떤 현상에 관하여 자신의 의식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안다면 그리 어려운 삶을 살지 않을 일이다.


왜곡

예를 들어서 명성황후의 살해 사건을 보는 시각이 쇄국정책과 당파 싸움, 왕족의 분열로 인한 결과로 생각하면 분명 왜곡이다. 사실이 그렇다고 한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일국의 왕비를 야밤에 궁궐에서 무참하게 살해 할 근거와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왕비의 시신을 살해 장소 근처에서 불태운다는 것은 세계 역사상 있지 않은 천인공로할 추악한 짓이었다. 조선이 그 이전에 일본제국의 속국이 된 일이다.

 

한일합방 일자를 주장함은 합방에 합법성과 정당성을 애써 주려는 짓이다.
이는 침략자 밑에서 빌어먹은 자들의 왜곡된 역사관이다. 그 결과는 심각한 폐해를 낳았다. 자녀가 밖에서 매를 맞고 오면 그 억울함과 원통함을 달래주기 보다는 왜 매를 맞고 왔냐고 아이에게 역정부터 낸다.


아이가 맞을 수밖에 없어서 맞았는데 너는 병신 같이 맞고만 왔냐고 추궁한다. 한 대 때린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그러면서 밥 이야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밥을 먹이는 이유가 남에 맞지 말라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런 부모의 반응은 잘못된 역사의식으로 인한 함량 미달의 왜곡 수준이다.  


때리고, 사기를 친 놈을 욕해야 하는데, 당하고, 맞아서 억울한 사람에게 먼저 쏟아 붓게 된다. 이는 당할 만하니까 당했다는 왜곡된 의식도 깔려있다.


여기서 그치치지 않는다. 상대를 먼저 때리라고는 하지 않지만 몇 번 참아도 계속하면 너도 때리라고 가르친다. 애들을 성인군자로 아는 바보 같은 생각이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맞다.


기본의식

과거의 문명이라 함은, 힘의 논리를 먼저 앞세운 것이라 당시에 우리가 무력적인 힘을 기르지 못해서 당한 것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은 기본의식 수준이다.


조선 말기에는 자급자족의 농경문화에서 서민이 세끼 밥을 다 먹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얼어 죽을 국가적인 힘을 기른다는 말인가!


역사의 현상에 관하여 내, 외적인 문제를 균형감을 갖고 살펴야 하는데, 왜곡은 내적인 면에만 치중했으며, 기본의식은 양쪽을 살피기는 했지만 균형감이 확연히 떨어진 것이다.


자녀가 매를 맞고 울면서 들어오면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우선 아이를 진정시켜야 한다. 부모의 감정이 요동치면 아이의 진정도 따라서 늦어진다. 그러면서 심하게 다친 곳이 없나를 살펴야한다. 그런 다음 자초지정을 참을성 있게 들어 주어야 한다. 이만해도 아주 훌륭한 상황이다.


아이 앞에서 흥분을 하거나 제분에 못 이겨서 화를 내면 아이는 폭력에 관하여 올바르지 못한 의식이 심어 질수 있다. 오늘날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데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지금이 사냥을 하는 시대도 아니고 이제 남자의 야만의 힘은 이사 짐 싸는데도 필요 없어졌다. 그러 함에도 맹목적으로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물론 공격적이지 않고 자기와 가정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방어적인 강함을 요구하지만 웃기는 생각이다. 힘이란 방어와 공격을 구분하지 않는다.

워낙에 강하지 못한 심성을 부모가 그런 식으로 몰고 가면 가정 폭력만 난무 할 뿐이다.


승화

황후 살해 사건에 대한 승화된 역사의식은 당시 조선 말기는 중국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세계의 힘의 변화와 흐름을 알지 못한 시대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단순히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이라고 몰고 가면 안 된다. 이는 명성황후를 대원군과 세력 싸움으로 외척이나 끌어 들이고, 무분별하게 외국세력과 야합한 부패하고 교활한 왕비로 몰고 가는 것과 같다. 당 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우리 안에 있다는 자조를 일으킬 뿐이다.


긴 세월 동안 대륙세력에만 의존적이어서 세계관이 좁아 중국이외에 겨우 러시아 정도나 아는 수준이며, 막대한 힘으로 세계를 제패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력의 해양세력은 물론 네델란드를 비롯하여 해상무역의 강자들은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하였다.


조선말기 상황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강대국들의 사냥감이 된 한 마리의 힘없는 토끼었을 뿐이다. 일본은 해양 세력의 거두인 영국의 지원과 미국의 지지를 받아서 아시아의 패권국가인 청나라와 러시아를 차례로 물리치고 아시아의 강자로 일어서면서 그들의 끈질긴 숙원이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채웠다. 여기에 조선이 속절없이 당한 일이지, 우리 내부의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일본보다 먼저 개방을 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그런 교훈은 당시로부터 200년도 전에 임진왜란 때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의 세계관에서 도무지 벗어 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반미를 왜치면 빨갱이라고 치도곤을 당하는 사회였다. 이를 연상하면 된다.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억울함도 풀어야 하지만, 왕비를 무참히 죽인 사건도 끊임없이 거론했어야 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것에 대한 수비적인 태세만 취 할 일이 아니었다. 한나라의 왕비의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반민족 행위자들에게 둘러 쌓여있나 방증하는 일이다.


최근에 역사를 배웠다는 어느 여자 분이 명성황후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랬다. 역사적인 인물에 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자조적인 의식으로 전위되는 것은 안 된다. 아무리 부인이 잘못해도 남편은 폭력을 쓰면 안 된다. 무자비하게 폭력을 당한 여인이게 맞을만 해서 맞았다고 하면 수긍하겠는가?

 

일국의 왕비가 아무리 잘못한 일을 했다고 해서 남의 나라 칼잡이들에게 야밤에 침소에서 살해 당 할 이유는 전혀 없는 일이다. 명성황후 살해 사건은 기실 왕후가 목표가 아니었다.

 

당시 고종과 왕후는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 일본 사무라이의 닌자는 암살을 목적으로 한 자객인데, 이들이 쓰는 가장 잔인한 방법은 당사자를 해하지 않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무참히 살해 하는 것으로 당사자에게 엄청난 모욕과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다.


아이가 매를 맞고 오면 앞서 살핀 기본의식 수준의 행동을 한 후, 아이가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폭력이 얼마나 나쁜가를 말해 주어야 한다. 자기가 금방 당한 일이라서 잘 깨달을 수 있다. 우리 부모님들은 아주 훌륭한 말로 아이를 달래 주었다.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도, 때린 놈은 꼬부리고 잔다.” 이 말에는 때린 상대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도 함께 있는 것이다.


폭력 상황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나, 일단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우선 피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폭력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과잉 대응을 하게 되는데, 어린아이들인 대게 일관성으로 그치고 만다.


같은 아이로부터 별다른 이유 없이 폭력이 두 번 이상 계속 이어지거나, 집단으로 맞았을 때는 대처를 해야 한다. 이때 주의 할 점은 학교와 상대부모와 함께 같은 장소에서 만나서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부모끼리 만나서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꼬이면 해결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


아이는 자신 때문에 발생한 상황을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집중하며 이를 보고 배운다. 이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평균의식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서 왜곡과 기본의 중간 단계에서 양쪽을 오가며 해매고 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