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효창공원을 성역화 해야 한다.

두 아들 아빠 2007. 5. 19. 08:39
 

효장공원은 원래 조선왕실의 능으로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곳인데 원래 명칭이 ‘효창원’이었으나 1940년 일제가 묘를 고양시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을 한 후 공원화 했다.


6월 26일은 백범김구 선생님의 서거 58주기다. 암살을 당하시고 딱 1년 만에 민족의 최대 비극인 6.25 전쟁이 터진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투사였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을 안장하고 자신도 이곳에 묻힘(1949년)으로써 이곳은 애국지사 묘역으로 거듭나야 했으나,


과거 친일반역정권은 효창운동장(1961년), 북한반공투사위령탑 및 어린이놀이터, 원효대사동상 건립(1969년), 노인회관 및 육영수 송덕비(1972년) 등의 시설물이 추가로 설치됐는데, 도무지 연고와 연관성이 없는 것들은 마구 세운 것은 ‘민족의 정기’를 흐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의 묘소가 모여 있는 효창공원 일대의 명칭회복과 성역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5월18일 국회에서 개최됐는데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은 `효창원 명칭회복과 올바른 성역화 방안‘에 대하여 토론회를 가졌다.


효창공원에 대한 부적절한 시설물 처리 문제 제기는 노무현대통령도 두 번씩이나 거론했다. 그런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현 용산구청장은 당연히 한나라당 속소이다.


무엇인 문제인가 사진과 함께 살펴본다.


(입구의 팻말)


 

(백범기념관으로 오르는 길. 효창운동장이 앞을 막고 있다.1961년 건설)


 

(백범기념관. 예전에는 테니스장으로 꾸몄다.)


 

(멀리 삼의사묘가 보인다.)


 

(효창공원의 지세에 정수리에 해당되는 가장 높은 곳에 이런 것이 떡하니 버티고 공원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파리에서 피살당한 ‘김형욱’도 함께 있다.)

 


(이봉창의사 동상 옆에 있는 건립문에 친일반역자 신문이 협찬을 했다고 버젓이 써 있다. 이 신문은 당시에 이봉창의사를 ‘범인’라고 하고 대불경죄를 저질렀다고 날뛰었었다.)

 


(백범김구선생의 묘소에 오르는 계단 끝이 틀어져 있다.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시정되어야 한다.)


 

(공원 외부에 유일하게 새워진 감시카메라다. 북한반공투사 위령탑 방향에서 김구 선생묘를 바라보고 있다. )


(감시카메라에 이런 모습이 보일 것이다.)


 

(김구선생 묘 앞에 서서 정면으로 보면 운동장의 라이트 탑이 버티고 있다.)


(대한노인회는 효창공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뒷마당 한켠에 이런 것도 있다. 이런 것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육영수 여사의 송덕을 기리는 비와 감사문이다. 대한민국의 노인회는 육여사의 은혜 아래 있다.

건물을 지어준 감사의 비인데 길 건너편에 유명한 자장면집은 이를 보고 '웃기는 자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노인회 바로 건너편에 용산의 명물 ‘신성각’ 수타 자장면집이 있다.)



친일반민족자와 군사 반란 수구세력들은 효창공원을 집요하게 분탕질을 해서 독립운동을 한 순국선열을 모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정녕 상해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2009년은 백범선생 서거 60주년 이다. 그 이전에 성역화 작업을 완성해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이 땅에 다시는 민족 반역과 군사 반란의 무리가 득세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