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의 달 5월에

두 아들 아빠 2007. 5. 22. 06:18
예전에는 ‘식구’라는 말을 많이 썼다. 아직도 시댁식구, 처가식구하며 자연스럽게 쓴다.

‘食口’는 한자 그대로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가족 구성원을 ‘먹는 입’으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좀 그렇지만 먹고 살기가 팍팍한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입 하나 늘고, 줄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먹고 살기가 훨씬 나아졌는데 가족의 의미가 중요성은 점점 퇴색되고 희석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가정의 달 5월도 이제 2/3가 넘어 갔다.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어제 성년의 날을 마지막으로 5월의 큰 행사는 끝났다.


가정은 사회구성 중에 가장 기본이 된다. 그래서 건전한 가정은 곧 건전한 사회를 말한다.

그 중요한 가정이 무너져 가서 미래 사회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정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구현하는 거룩한 곳이다. 가정은 거룩함이 훼손되면 더 이상 가정으로 존재의 이유가 없다. 이혼이 허락되는 이유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 성신, 성자 하나님을 말하는데 각기 다른 위격을 가지고 게시지만 오직 한 분이시다. 가령 인간의 가정에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성부하나님은 아버지에 해당되고 성신은 어머니, 성자는 자녀로 대비 될 수 있다.


다른 위격이지만 한 분이 시다는, 가족 구성원은 각기 다르지만 외부에서 가정은 한 공동체로 보아서 한 몸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끼리는 더 높임을 받는 일도, 차별도 없다. 가족도 부부는 한 몸이라도 하며 자녀는 부모와 같은 격의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 자녀란 부모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잠시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지워지는 것이지 애초에 자녀에게 권리나 주장할 것은 전혀 없다.


사람이 죽어서 낙원에 가면 이승에서의 관계성은 모두 없어진다. 그래서 아들과 아버지가 만나도 서로 존중을 해야 한다. 그 때를 상상하면 자녀에게 절대로 억압적이거나 억울하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 사랑의 원천은 부부사랑에 있다. 부부사랑이 없으면 모든 가족사랑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런 구조에서는 온전한 자녀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부모는 워낙에 자녀를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이를 완전히 내려놓아서 진정한 권위의 왕관이 없어진 것이다. 단지 돈만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이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기리기 아빠들은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 조기유학을 보낸 이 시대의 ‘교육확신범’인데  실은 아주 심각한 ‘자녀교육 포기자’ 들이다.


가장의 진정한 권위 아래 가정의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저 힘과 권력으로 하면 심각한 왜곡이 벌어지게 된다. 왜곡된 모습은 대를 물려서 문제가 되고 사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종교는 사회적으로 양심을 다 잡아주고 사람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하여 준다. 그리하여 심각한 문제는 야기 시키지 않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오히려 왜곡된 가르침은 가정과 사회의 혼란을 끊임없이 야기 시키는 경우도 있다.


가족사랑은 이웃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는 부모세대는 이웃 가정으로 자녀세대는 또래 사랑으로 함께 확정되어야 하는데 엄청 조밀한 도시에 살면서 이웃사랑은 하지도 않고 그저 외롭고 고독하다고 한다.


인류 최초의 이웃은 가정을 꾸며 독립한 자녀가정이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웃과 끊임없이 분쟁을 한다. 왜냐하면 부모가정과 자녀가정의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왜곡이 가정과 이웃의 문제로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사랑 - 또래사랑 - 부부사랑 - 자녀사랑 - 이웃사랑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개념과 실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다섯 단계의 사랑에 관하여는 다음에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