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1.노인들의 현재와 미래의 어려움

두 아들 아빠 2007. 7. 11. 15:37
 

노인들의 어려움은 첫째가 ‘빈곤’이다. 최저 생계는 유지 되어야 하는데, 생계를 유지 시킬 일거리도 없고, 모아 둔 돈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아주 실체적인 두려움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들의 들짐승도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을 먹이고 입히지 않으시지 않겠냐는 말씀이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미물도 하지 않는 걱정을 한다는 질책이다.

두 번째는 절대적 빈곤에 비하여 어려움의 격이 떨어지지 않는 ‘단절’이다. 인간관계성에서 단절이야 말로 ‘산자의 죽음’에 비유 할 수 있다.

노인들 중에서 자기는 절대로 노인정 같은 데는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있다. 같은 노인을 폄하하고 자신은 젊게 살겠다는 말인데 아이들 같은 심성이다. 노인은 노인들과 함께 해야 한다.

마나님들은 그동안 아이들 양육에 시간이 없어서 만나지 못한 이웃들을 만나느라 바쁜데 퇴직한 남편은 집에 혼자 남아서 점심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울컥 나왔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남자들의 경우는 경제적인 사고와 테두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치기준을 경제논리에 맞춰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웃도 이런 관계성이 떨어지면 잘 만나지 않는다. 자신이 경제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교제는 당연히 확 줄어들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건강’이다. 생로병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없는 공평한 결과지만, 같은 인간이 보아도 이해 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은 죽자, 살자 돈을 벌어 건강을 해치고는 벌은 돈으로 약값과 병원비에 다 쓴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배우자와 사별로 고통을 받는 일인데, 나이가 많이 든 노인들도 부부가 함께 살면 노인 특유의 냄새가 덜하다. 남자가 홀로 남는 경우는 냄새가 문제가 아니라 삶이 처참해 질 수 있다.

남자는 생산 활동을 중단하며 쓸모가 없기 마련이다. 오로지 경제 활동에만 전념한 남자의 경우는 그럴 확률이 훨씬 높다.

사람을 동물의 습성에 비유함은 마땅치 않지만, 숫컷 사자의 경우 이빨이 빠지고 힘이 없어지면 무리에 쫓겨나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인간 세상도 힘을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면 동물의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미래에 노인들의 어려움은 사뭇 다를 수 있다. ‘행복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래의 노인들에게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 할 수 있다.

또한 자녀와의 관계성에서 이전과는 다른 어려움이 예상된다. 온전한 성인 되지 못한 자녀들이 부모 주의를 맴돌면서 삶을 기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부모와 거의 단절에 가까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돈푼깨나 있는 부모들의 착각은 자기가 죽을 때까지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마치 신앙처럼 믿고 있는 것인데, 결국 자식을 ‘돈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만일 똑똑하게 큰 자식이 ‘더러워서 그 돈 안 받겠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절대로 그렇게 키울 일이 없기에 안심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퇴직 이혼이 성행하고 있는데, 퇴직한 남편을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쓸모없는 낙엽이 젖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일본은 올 4월부터 이혼할 때 남편의 연금 절반을 부인에게 나누어주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의 연금이야 담배 값도 안 되어서 별 소용이 없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라고 일본의 전철을 밞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부모의 가치관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질수 밖에 없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팽배한 황금만능주의가 더하면 돈 없는 부모는 부모도 아닐 수 있다. 부모가 늘 돈을 앞세우고 돈 타령을 하면 이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예전에 우리네 부모들은 아이들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금기시 해왔다. 돈에 관한 의식이 없는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돈이란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 부모들은 이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이들 앞에서 돈 자랑하거나, 못사는 동네 아이들과 놀지 말고까지 한다.

일전에 모 일간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대학교수까지 불러 놓고 경제학 강의까지 한 적이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한다고 부의 전수가 될지 알면 큰 착각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50년대 말 부터 60년대 말까지의 인구가 퇴직이 되는 시기인 2014년 이후에는 이들이 세력화 되어서 노인 복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예측이 있는데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인이 젊은이의 고혈을 빨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부모와 자식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와 ‘자식의 덕을 보려는 마음은 도적의 마음이다.’ 여기서 많은 부모들이 오해를 하는 것은, 아무 부모나 공경하라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삶을 바르게 산 부모만을 지칭한다. 그렇지 않는 부모는, 하나님이 공경하라 명령해도 그 자식이 절대로 듣지 않는다.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키워 준 대가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인류는 번성하지 못하고 멸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도적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늙은 부모는 자식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그게 당연한 처사다. 자식이 커오면서 부모의 눈치를 본 것에 십 분에 일도 보지 않으려면 분명 ‘도적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