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영화 ‘화려한 휴가’는 분노의 과녁을 벗어났다.

두 아들 아빠 2007. 8. 1. 10:56
(스포일러를 주지 않으려고 썼다.)


모든 종교와 사상은 인간의 ‘분노’를 경계한다. 역사의 큰 義와 흐름을 보지 않는 분노는 개인적인 원한이며, 자신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사회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분노해야 할 때가 있다.


분노 앞에서 쏟아지는 울음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부터 생각하고 영화관에 들어간 이유는 이해찬 전 총리 부부가 우는 사진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분노의 근간은 두려움이라 한다. 이와 함께 자신은 그 때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함에 대한 회한의 눈물을 쏟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미리 가지고, 울지 않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영화를 보려고 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된 인격체라면 ‘악’은 악이라고 말하고 이를 분노해야 하며, ‘선’은 선이라고 칭송하고 본받으려 해야 한다. 이렇게 악과 선에 관한 말과 반응을 해야 온전한 사람이다.


인간은 이성적 의지와 정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 그게 감성의 폭발이다.

두 아들은 형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아내는 아들을 잃은 눈먼 어머니를 보고 울고

나는 고등학생들의 죽음과 분노 앞에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돼지와 소도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일정한 장소에서 도륙을 한다. 당시에 실정법으로도 가축이라고 길거리에서 마구 잡으면 안 되었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길바닥에 널부러져 죽어 나간 광주 시민은 인간은 커녕 짐승도 아니었다.


짐승도 도륙하기 전에는 쓸데없이 두들겨 패지 않는다. 그런데 개 패듯 사람을 후려치는 군인들의 분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들도 두려움을 떨치려고 하는 행위다.

영화의 한 대화에서 총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벌어진 인간 도륙 사건을 그동안 각자가 먹고 살기 위해서 애써 외면해왔다. 나의 눈물이 두 아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지 모르지만, 다시는 이 땅에 인간이 인간을 도륙하는 짓을 역사가 용납하지 않기를 소원한다.


광주 학살 사건은 사실 민초들끼리 피를 흘린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최고 지위관이라고 해봐야 대위와 대대장인 중령급 정도다. 이들은 대단한 권력을 가진 자들도 아니다. 이들과 민초들 간에 피를 본 일이다.


도를 깨우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분노 할 때 분노하지 못함은 가슴 속에 큰 굴욕으로 남기 마련이다. 억눌려진 굴욕감은 엉뚱한 곳에 분노로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실수로 인한 사소한 접촉사고로 점잖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멱살잡이를 하는 짓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


정말 흉악한 범죄 집단이, 자국 땅에 무단으로 들어 온 기독교인을 납치 살해한 탈레반인지, 아니면 자국민을 난장에서 무자비하게 살해한 전두환 일당인지를 먼저 분명히 규명하고 분노의 화살을 날려야 한다.


그 이전에 반민족 행위자들이 이웃을 팔아먹는 대가로 호의호식함은 대단한 불의함이며 이를 알면서도 어찌 하지 못함으로 대한민국 역사는 굴욕이라는 반석에서 시작한 것이며, 이로써 박정희의 군사 반란과 연이은 전두환 반란을 허용했다. 그 두 일당은 군복을 입은 떼강도라고 해야 맞다.


권력을 찬탈한 자들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에게 엉뚱한 분노심을 일으켜서 사고를 친 것이다. 영화는 학살의 책임자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메아리 같이 처리 했다.


피를 보고 정권을 잡은 자들이 외친 모토는 웃기게도 ‘정의사회구현’ 이었다.

전두환 일당은 죽어서 지옥도 있지만 살아서 지옥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선함과 구제에 대한 화살은 과녁을 조금 엇나가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 빗나간 화살에 맞아 봉 잡는 사람은 있어도,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에 관한 화살은 정확히 과녁을 명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도청 앞에서의 진한 농담은 페이소스로 작용하여 학살을 예고하고 잔인함을 극대화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극 전체적으로 간간이 희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어서 감정의 끊김과 끓어오르는 분노심에 찬물을 끼얹어 흩뜨려 놓기도 했다. 이는 적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무자비함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정작 분노의 핵심을 찌르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연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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