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영화 ‘사랑’을 보고 2.

두 아들 아빠 2007. 10. 3. 14:0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볼 예정이 있는 분들은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영화 ‘사랑’은 어린 아이가 느끼는 풋사랑에서 에로스 사랑까지를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에로스 사랑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그만큼 파괴력이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원천은 가정이다. 그런데 영화 ‘사랑’에서 나타나는 가정은 모두 비정상적이어서 도무지 그런 가정에서 온전한 사랑이 나올 리 없다. 주인공 ‘인호’의 가정은 영화의 첫 장면부터 작은 트럭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사 짐을 실고 달동네로 간다.


인호(주진모 분)는 이사 가는 트럭 안에서 교회을 나와 바이올린을 들고 승용차에 오르는 ‘미주’(박시연 분)를 보게 된다. 엇갈린 운명 같지만 결국엔 같은 운명을 가게 되는 영화의 묘한 복선이다.


미주와 한반이 된 인호는 미주의 생일 초대를 받는데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예상되지만 막상 초대 된 날에 미주의 집안은 빚쟁이들의 난리판이 되어서 밥을 같이 못 먹는다.


우연의 거듭은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떨어트리기 마련이며 이 영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주의 생일 날 집안이 험한 꼴을 당하는 것도 그렇고, ‘지랄 같네 사람 인연’이라고 하는데 국내도 아닌 일본까지 원정 인연은 너무 심하다 싶다.


이야기의 구성은 미주와 그 집안에 뛰어든 인호의 짧은 인생을 그려내고 있는데 인호와 미주 오빠 상우의 폭력적인 첫 만남은 그들 둘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고한다.


망한 집안이라 치료비를 대지 못한 미안함으로 미주 오빠는 인호에게 퇴원하면 자기 집에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는 했는데 미주 엄마는 술에 취해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밥을 차려 주는 것은 포기하고 인호가 담배나 편히 피울 수 있게 엄마보고 나가라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 미적거리는 엄마에게 분노가 폭발한다. 마지막으로 집어 던진 물건은 방안에 있던 전기밥솥이었다.


미주의 엄마와 오빠가 함께 분신자살을 한 것은 엄마가 조폭들의 돈을 빌려서 노름으로 탕진했기 때문에 그들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그런 것 같다. 졸지에 고아가 된 미주는 인호와 함께 해변의 절벽에서 엄마와 오빠의 뼈 가루를 뿌린다. 이들 둘의 운명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는 한석봉의 어머니나 맹자의 어머니 같이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름과 술 담배에 찌든 엄마와 앞으로 보지 못하는 엄마만 있을 뿐이다.

 

이영화의 대사 중에 여성들이 열광할 만 것은 “네가 너를 지켜줘도 돼 나!” 다.

아직 부모의 지킴을 받아야 하는 이제 겨우 17살의 소년, 소녀는 서로를 지켜주기로 약속을 한다. 이는 자신들이 부모로부터 지킴을 받지 못한 처절함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들은 켄터키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유일하게 먹는 장면인데 식욕이 일어남은 웬일인가?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지켜준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만 그나마 지켜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의 부모는 일찍이 모든 걸 포기 한 상태였다.


곽경택 감독이 그리는 사랑은, 풋풋하고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서 여성들의 심한 거부감이 있을 부분이지만, '친구'에 이어서 자기 방식대로 남자들의 거친 사랑과 파괴적이고 마초적인 사랑을 그려냈다.


미주를 겁탈하면서 “사랑 해” “좋아 해”를 연발하는 치권(김민준 분)의 야비함은 촬영장에서도 모두들 섬뜩하게 느꼈다고 한다. 방안에서는 강간이 벌어지데 부엌에서는 똘만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맛만 보았지 그 라면을 다 먹지 못했다.


모든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잔혹한 복수로 미주를 지켜주겠다던 인호는 감옥에 간다.

미주는 인호의 엄마로부터 다시는 자기 아들과 만나지 말을 듣고 인호 곁을 떠나려고

밀수업을 하던 아버지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한다.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허황된 약속은 깨진 일이다.


인호가 회장의 심복이 된 것과 미주가 회장(주현 분)의 정부가 된 일은 이 영화의 최대의 우연 조작극이다. 이를 “지랄 같네 사람 인연”라고 넘어 가지만 지랄은 인연이 아니라 스토리 전개 방식이 아닌가 싶다.


세상 적으로 성공했다는 회장도 정부를 거느리는 것을 보면 그도 온전한 가정은 아니다. 회장의 정부가 된 미주와 인호의 관계가 들통 나자 적당히 처리하라는 회장의 지시에 끌어 들인 조폭이 17세에 만난 조폭이라는 사실은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났다.


회장이 인호와 미주의 관계를 다 안 후 인호에게 라면이나 끓여 먹자는 제의를 거절하는데 미주가 강간을 당할 때 부엌에서 끓이던 라면과 중첩된다. 두 남녀는 결국 도망을 선택하지만 예전에 복수가 원만하지 못했던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자가 먼저 죽지만 이 영화에서는 로미오가 먼저 죽는다.

회장은 인호에게 자초지정을 다 듣고는 이렇게 말하며 함께 하기를 권한다.

“여자는 순간이다.” 이에 인호의 대답은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하고 자신도 한 마리가 새가 되어 나른다.


첫 사랑과 늙은이의 애완견 같은 사랑이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


곽경택 감독은 관객이 마음 놓고 울 여유를 주지 않는다. 눈물이 많은 사람도 눈물을 찔끔 흘리고는 말게 하는데 아마도 영화 속의 처절한 주인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관람 평 후기


프로이드는 자신이 구축한 정신분석학이 근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 친지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감독도 마찬가지다. 감독이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 속에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이 영화 속에 배어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끄집어내는 것이 온전한 비평이 아닌가 싶다.


영화의 내용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영화음악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게 나의 한계인 것 같다.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음악이 장면에 그리 거스르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