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부부는 같은 나라 2.

두 아들 아빠 2007. 8. 7. 11:59
앞선 ‘부부의 만남과 출발 1.’이라는 글에 왜 흔해빠진 사랑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나하는 의문을 갖는 경우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는 여성이나, 신혼이다. 아줌마들은 부부 사랑이라는 말을 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의문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된 이유를 살펴본다.


부부는 둘만의 독립적인 삶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 이전에 부모, 형제 가정은 이웃일 뿐이다. 그냥 이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이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정말 부모, 형제, 자매 가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이웃인가?

그저 피붙이라서 마지못해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배우자도 자기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이유는 이웃이 이웃으로서 자기 주제를 넘었거나, 자신이 이웃에게 쓸데없이 가지고 있던 기대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혼인한 아들 집에 별 일도 없으면서 전화를 잘 안한다고 강자를 부리거나, 무시로 찾아가고, 반찬거리 등을 싸들고 딸 집에 수시로 찾는 일은 겉으로는 선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다.


혼인한 자녀 가정이 못 믿어 어우면 부모가 자녀를 잘못 가르친 일이다. 따라서 통탄 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녀가 새 가정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기를 지지해야 한다.

지나친 간섭은 이웃으로써 주제를 넘는 일이다.


이런 경우는 자녀가 한참 자라날 때 보살피지 못하거나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 마음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 자녀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먼저 나서면 안 된다.


혼인한 자녀들도 부모에 대한 기대를 접고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새 가정을 꾸미고도 부모 가정과 이래저래 연속적인 끈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바림직한 결과를 보지 못한다.


특히나 경제적인 문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부모가 도움이 필요하면 부부가 함께 모든 것을 열고 상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늙은 부모는 욕심을 버리고 근검한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착취를 하는 것이다. 늙었다는 것은 줄여가는 지혜가 그만큼 많아 졌다는 것이다.


부부싸움 중 가장 격렬하고 오래 상처가 남는 것은 각자의 집안의 흉을 보고나 욕을 하는 것이다. 한, 두 번쯤은 이런 것으로 격렬하게 싸움을 하거나,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받고는 암묵적으로 이 부분에서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 야합(?)을 이루게 된다.


이는 부부가 함께 가는 길이 멀어지는 시점이다. 야합을 이룬다고 부딪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사람이 스스로 바뀌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 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있다.


이럴 때 ‘부부는 같은 나라’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전혀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부부는 각자 집안의 명예를 걸고 링 위에 올라 온 권투 선수가 아니다. 부모세대가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자녀의 진정한 독립적인 사고를 막아서 생긴 불행한 일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삶 뿐 아니라 자녀세대에 이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각자의 가정에 대한 본받을 것은 받고, 문제점을 까발리고 혹독하게 비판 할 것은 비판을 해야 한다.

 

자기 가족끼리 그리 친밀하지도 않으면서 남 앞에서는 과시하려 한다. 자기들의 억울함을 남을 끌어 들여서 해결하려는 파렴치함도 있다.

 

자기 집안의 문제를 덮어두거나 호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야 결코 부부는 ‘같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여기에 ‘사랑’이란 존재 할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원수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