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왜 사춘기 아들과 아버지는 어려운가? (1)

두 아들 아빠 2007. 9. 4. 06:18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버지도 온전한 사춘기를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서 아버지와 아들은 감정의 강을 일찌감치 건너게 된다. 그 이후는 아버지의 말은 다 잔소리에 불과하다. 마지못해서 듣고 있지만 다 흘려보낸다.


자녀가 10살 전후가 되면 자아의식이 점점 확고해 진다. 이때쯤이면 지진아가 아니라면 부모의 수를 읽게 되며 자기가 어떤 언행을 하면 부모가 화를 낸다는 것과 어느 상황에서 부모들이 흥분을 한다는 사실도 거의 간파한다.


이후부터 부모의 일관성 없음이 보이고 억울함이 점차 쌓여간다. 사춘기는 어른으로 가는 길목인데 안정감이 심히 떨어지지만 자아 표출이 최고조로 오르게 되어있다. 그래서 물건도 망가트리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말썽도 피우게 된다.


이시기에 아버지가 부모로부터 관용 받고 논리적으로 설득을 받았다면 이를 자녀에게 똑 같이 할 수 있는데 대게는 그런 대접과 훈련과정이 없었기에 자신이 받던 대로 하게 된다.


사춘기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때로는 어른 대접을 받고 싶고 어떨 때는 어린아이처럼 굴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 이를 부모가 보면 해 깔리기 마련이다. 이를 웃어  넘기고 받아 줄 때도 있지만 상황이 전혀 맞지 않으면 화를 버럭내고 심하면 매를 들게 된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이도 일관성이 없다고 억울하게 생각한다.


아이가 상황에 맞게 카드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하고 훈육해야 하는데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지만 자신도 이런 과정을 겪지 못해서다.


아버지가 사춘기 아들과 교감이 끊어지면 너무 일찍 가정교육의 주체자로서 노릇을 못하게 된 일이다. 그저 친구들끼리 하소연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이에 대한 심각성은 자녀가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다는데 있다. 예전에는 모두들 같은 상황이어서 별 문제 안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주변에서 보면 아버지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을 아무런 검증 없이 아들에게 주입식으로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자기연민’이 가장 많이 녹아 내는 대상은 자식이다. 자기연민은 결국 ‘자기 억울함’이다. 그래서 더 강조하게 되는데 이게 아들의  상황이나 생각과 잘 맞지 않을 수가 많다. 자신은 아들을 위한 다는 행위가 도리어 서로를 더 멀게 한 일이다.


아버지가 자기연민에 푹 빠져서 해어나지 못하고 도무지 아들에게 전위가 되지 안거나, 한다 하더라도 늘 화부터 낸다거고 걸핏하면 매를 들며, 아니면 방관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아버지는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쪽저쪽 조금씩 섞어서 반응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모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차이는 서양의 2~3대 차이보다 더 날 수 있다. 그만큼 급변하는 사회다. 서양은 산업화에서 IT시대까지 20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불과 40년 만에 이를 모두 치렀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는 세상과 앞으로 살아 갈 세상이 보모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이런 성찰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아버지의 말이 사랑하는 아들이 듣기에는 꼰대의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후원하는 최대의 전략가다. 사춘기는 많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먼저 이를 인정하고 잘못을 꾸짖기 보다는 왜 네가 그렇게 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전략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그저 학원과 과외 선생에게 몰아넣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조지는 식은 효과를 전혀 기대 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했는데 자녀가 공부를 잘했다면 거저 키운 일이다.

제발 이런 부모들이 어줍지 않게 ‘자녀교육 어쩌구~’ 하는 책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들은 대게 이런 책을 읽으면 기가 죽게 된다.


학원과 과외선생님의 지도 방식이 적절한가, 자녀의 실력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지도를 하는가를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아주 간단하게 파악하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시험을 치루기 전에 지도 선생님과 상담을 해서 자녀가 몇 점을 맞을 것인가 예상 점수를 물어보고 결과와 비교하면 된다. 대략 점수 차이가 10 점이내면 오차 범위 안이지만 그 이상 차이가 나면 아이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지도방식도 문제가 있기에 바로 바꾸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당사자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내의 역할도 엄청나게 있다. 

사춘기 아들의 모든 것을 아내에게 떠맡긴 아버지는 이미 부모로서 자격을 상실한 일이다. 따라서 결과에 관하여 논할 여지가 없다.


사춘기 아들은 엄마가 감당하기 어렵다. 시간이 없고 힘이 들어도 아버지가 적극성을 가지고 뛰어 들어야 한다. 한 주에 단 하루라도 진진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해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비교적 아이가 관심이 있는 부분이나 분위기를 바꾸어서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아버지가 마음을 열고 아들과 대화를 시도하면 아들도 말문을 열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간절히 원하고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어렵다. 결국 아버지의 잘못된 권위에 도전해서 이를 깨부수고 어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참 서글픈 홀로서기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짓눌려서 항거 한 번 못하고 성인이 된 사람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스파링 상대이며 동시에 코치를 자처 할 것인가! 아니면 이종격투기 식으로 죽자 사자 맞짱 떠서 누구 하나가 떨어 질 때까지 싸워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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