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의식혁명 요약

두 아들 아빠 2008. 4. 27. 19:46

데이비드 호킨스박사의 '의식혁명'(Power VS Force) 한문화 출판사(정가 10,000원)에 대하여 예전에 제 블로그에 정리한 글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에너지라 하고 그 수준을 수치화한 흥미로운 책입니다.

 

우리는 가시적으로 보이고 실체적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힘이나 금권, 권력등이 실제적인 힘이라고 믿고 인정합니다. 우리 안에 내제된 의식은 그저 생각일뿐, 힘이라고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나 미적인 관념도 마찬가지 입니다.

 

물리적인 힘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는 원시적인 것으로 종국에 가서는 전쟁이 일어 납니다.

이 책은 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에너지 수준 20 : 수치심

이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의 성격은 융통성이 없고 완벽주의자적인 사고 방식으로 수치심을 보상하려 하며 무엇에 사로잡힌 것 같이 자기자신을 몰아갑니다. 나쁜 여성을 벌하고 도덕성을 세운다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유영철 같은 사람이 극단적인 예이고, 여성의 경우 어렸을 적에 당한 성폭행등이 치유되지않으면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를 잔인하게 몰아간다.

 

에너지 수준 30 : 죄의식

자기 연민이나 자기 학대, 피해의식에서 생기는 여러증상이 나타나며, 자살을 불러오기도 한다.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일생동안 싸우는 사람이나 이를 전면 부인하고 필사적으로 도피하는 사람 모두가 죄의식의 소산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종교단체의 선동자들에 의해 강요 당하고 조정 당하기 쉽다.

 

에너지 수준 50 : 무기력

비애가 인생의 주제이다. 빈곤, 절망 , 자포자기로 집도 없이 해메는 노숙자들이나 나이든 노인의 체념상태이기도 하다.

 

에너지 수준 75 : 슬픔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이다. 어렸을 적에 커다란 상실은 슬픔과 비탄을 삶의 필요악인 것 처럼 받아들인다. 만사를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족이나 건강, 직장 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때론 자살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무기력' 상태보다는 더 많은 에너지를 보여준다.

무기력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그것은 회복의 조짐이다.

 

에너지 수준 100 : 두려움

이 단계부터는 그래도 건강한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

두려움의 확산은 인간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다. 전염성도 있어서 집단이나 사회 전체를 지배 할 수도 있다. 이 수준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극복한 것으로 보이는 지도자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가 자신들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바란다. 종교 맹신자들도 이 범주에 든다.

 

에너지 수준 125 : 욕망

경제적인 욕구를 위시한 욕망이야 말로 인간 행위의 광범위한 동기로서 작용한다. 이는 집착의 수준이다. 그래서 욕망이 인생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으로 되어 버릴 수도 있다. 

T.V를 바보상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나, 이 T.V야 말로 억압받은 시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킴으로서 그들을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게 한 일등공신이다.

결과에 따라서 아래 단계로 곤두박질 칠 수 있는 불안한 단계이다. 

 

에너지 수준 150 : 분노

분노는 살인이나 전쟁으로 발전 할 가능성이 있지만 죽음의 수준을 맴도는 단계에서는 훨씬 벗어난 상태이나 이를 분개나 복수로 달리 표현하는데 폭발적이고 위험하다. 잘 싸우고 소송을 일삼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든다.

분노는 좌절된 욕구에서 생기므로 그 아래 수준인 욕망의 수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는 증오로 전환되기 쉽고 한 개인의 삶 전체를 부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에너지 수준 175 : 자존심

미국의 해병대를 통솔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이고 미국의 국민이 동경하는 수준이다. 이보다 아래 단계의 에너지 장보다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존심의 팽만'은 추락하기 일보직전 이다.

자존심은 분열과 파벌주의를 초래한다. 또한 최대의 약점은 오만과 부정이다. 이들은 스스로 의식의 성장을 차단한다. 이들의 특성은 경쟁심을 유난히 고취시킨다.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런 수준의 사람이 지도자가되면 그 집단이나 나라는 어려워진다. 왜 이단계에서 쓸데없이 한나라당 사람들이 자꾸 생각 날까?

 

에너지 수준 200 : 용기

이 수준에서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자기가 흡수하여 소모한 에너지만큼 세상에 그 에너지를 되돌려 보낸다.

인류의 전체적인 수치가 190에 머물러 있다가 20년전 부터 204의 수치로 괄목할만한 비약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 치수일 뿐이다. 아주 높은 단계의 소수가 수 많은 아래 단계의 사람을 상쇄한다.)

 

이 단계에서 자신의 단계가 보입니까? 아님 주변의 사람이 보입니까? 

여기서 한 마디!

'사랑'의 단계는 이성의 단계를 넘어서 에너지 수준 500에서 측정 될 만큼 고도함이다. 우리가 얼마나 저급한 상태에서 '사랑'을 논하고 있는가를 이 책은 간접적이지만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앞서 요약한 수치심, 죄의식, 무기력, 술픔, 욕망, 분노, 자존심, 용기가 각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은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내제된 의식으로 겉으로 들어나지 않거나, 기본적 삶이 충족되어 유지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단계는 단계별로 의식의 차이가 있다. 이런 삶의 양태를 기독교에서는 ‘성화된 삶’이라고 하는데 책의 내용을 초 간단으로 요약해 본다. (이 단계 이상으로 오른 사람은 정체는 되어도 아래 단계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에너지 수준 250 : 중용

 결과를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이 어떻게 굴러 가던 근본적인 수용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믿을 만 한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잘살아 갈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다. 이런 사람은 힘께 지내기 쉽고 친하게 지내더라도 전혀 위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립, 경쟁심리,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이 수준에 오른 사람은 자유를 중시하기에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

 

에너지 수준 310 : 자발성

 실직을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물론 쌓아 둔 돈이나 사업 수단을 믿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려고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하며, 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들은 밑바닥 일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수치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파트 경비원들 중에 이 부분에 속해 있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자긍심이 높고 이것은 사회적인 인정, 존중 또는 보상 등에서 오는 반응에 의해 항상 보강된다.

‘자발성’이란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반응해 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 수준의 사람들이 사회를 움직이고 기여한다. 곤경과 시련으로부터 배우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결점을 스스로 바라보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배우려고 한다. 우리사회에 아주 귀중한 자원이다.

 

에너지 수준 350 : 포용

 포용이란 무기력한 무저항과는 다르다. 인생사를 받아들이고 특정한 방향으로 억지로 이끌어 가지 않는다. 인생의 여러 외적인 힘에 대응하면서도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옳고 그름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문제의 해결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정렬을 쏟는다. 대립되는 의견이나 갈등에서도 극단주의를 선택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자신과 똑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평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럼으로써 차별과 편협을 초월한다. 평등이라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에너지 수준 400 : 이성

 이 단계에서는 하위 수준의 감정에서 벗어나서 지성과 이성이 삶의 전면에 떠오른다.

광범위한 자료를 처리할 능력을 갖추고 바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 준다.

관계의 미묘함과 점진적인 변화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곳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고 추상적인 개념과 같은 상징체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 위대한 지도자, 아인슈타인, 프로이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책에서는 대법원의 판사도 포함된다고 했는데 한국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성만으로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광범위한 지식과 문헌을 생산해 내지만 방대한 자료와 결론 사이의 모순점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수준에 도달하기도 어렵고 초월하기란 우리사회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에너지 수준 500 : 사랑

 사물의 본질을 분별할 수 이t는 역량이 중대하여 문제의 핵심을 꿰뚫수 있게 한다.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게됨에 따라 문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전후 과정을 선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성은 문제를 일일이 따지는 경향이 있지만 사랑은 전체를 다룬다, 이 수준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의 단계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열심히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혹당하고 있는 현존하는 모든 종교가 500 혹은 그 이상의 수치로 측정됨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의 0.4%만이 이러한 수준의 의식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에너지 수준 540 : 기쁨

 이 수준에서는 치유가 시작되며, 영적인 자조 그룹은 이 수준에 속한다. 성인, 영적 치유자, 그리고 그 제지들의 영역이다. 자비의 마음 상태가 된다. 세상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데 눈을 띄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과 신성의 표현임을 확신한다. 자신의 능력을 어느 특정한 개인보다는 생명 자체에의 유익을 위해 쓰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 많은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은,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의 능력도 증폭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사망선고를 받고도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에 540-600의 에너지 수준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경험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부언하지 않았지만 그저 잠시 경험뿐이다.

 

에너지 수준 600 : 평화

 이 수준은 천 만 명 중 한명 꼴로 나타난다는데 다음의 700 이상 수준의 깨달음과 같이 저자도 이에 대한 설명이 궁색하다. 어쩌면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소개를 못하겠다.

모든 종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성의 소유자들이라고 한다.

 

에너지 수준 700-1000 : 깨달음

 저자는 이 아래 단계에서는 40-50 단위로 쪼개서 설명하다가 갑자기 100단위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바로 사람이 아닌 신의 경지에 다 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크리슈나(힌두교 신), 부처,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하며 신성과 동일 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