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오늘은 두 명의 악인이 총 맞고 죽은 날

두 아들 아빠 2007. 10. 26. 22:38
1909년 10월26일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고 70년이 지난 1979년10월26일에는 박정희가 죽었다. 박정희의 죽음은 따로 살피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고 안중근의사에 관하여 몇 자 적어 본다.


도마 안중근을 지워버린 천주교


일본으로서 안중근은 자국의 너무나 아까운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흉악한 범죄자다. 얼마나 훌륭했으면 2004년까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1000엔짜리의 일본 지폐에 그자의 초상화가 사용되었다.


한때 안중근이 테러리스트냐,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왔는데 전쟁은 광기에서 저지르는 미친 짓이며 그 안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안중근은 악에 대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저항을 뿐이다. 그래서 암살이 아니고 사살이다.


안중근은 히로부미를 사살한 변으로 동양평화를 저해하는 인물이라고 하며 15가지의 이유를 들었는데 첫 번째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죄라고 했다. 안중근이 그토록 열망하고 바라던 동양의 평화는 그 이후로 36년을 더 끌었다.


‘도마’는 안중근의 천주교 영세명인데 당시에 교황청과 프랑스 정부는 안중근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외교적인 문제로 훈령을 통해서 어느 누구도 안중근을 면회 가서는 안 된다고 막았다.


한국의 천주교는 더 철저히 버렸다. 한국천주교는 안중근 사건 직후 도마 안중근을 제명시켜버렸다. 그 후에도 계속 제명상태가 유지 됐는데 그도 그럴 것이 김수환 추기경은 일제의 군관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85년이 지난 1994년 그의 생일날인 2월21일에 도마 안중근을 복권시켰다. 당시에 이완용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같은 종교를 믿어도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아래는 도마 안중근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뮈텔주교의 명령을 어겨가며 안중근이 요청한 성사를 집행한 빌렘신부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 내용이다.

 

예수를 찬미하옵니다. 자애로우신 신부님이시여, 저에게 처음으로 성례를 주시고 또 최후의 그러한 장소에 수많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특히 오셔서 친히 모든 성사를 베풀어 주신 그 은혜야 말로 어찌 다 사례를 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다시 바라옵건데 죄인을 잊지 마시고 주님 앞에 기도를 바쳐주시옵고, 또 죄인이 욕되게 하는 여러 신부님과 여러 교우들에게 문안드려 주시어 모쪼록 우리가 속히 천당 영복의 땅에서 혼연히 만날 기회를 기다린다는 뜻을 전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교께도 상서하였사오니 그리 아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자애로우신 신부님이 저를 잊지 마시기를 바라오며 저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