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주에 대한 단상 1

두 아들 아빠 2008. 9. 18. 11:13

 

제가 이곳 공주로 이사를 온지도 한 달이 되어 갑니다. 역사가 깊고 전통이 있는 도시는 장마당에서도 나름 질서와 품위가 있어 보입니다. 충청도 하면 양반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니죠! 그 전형의 도시가 공주라고 생각합니다. 공주는 제 고향도 아니고 예전에 특별한 인연이 있던 곳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공주 사랑'에 푹 빠져 있답니다.

 

공주는 1932년까지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감영과 관찰사가 있던 곳입니다. 당시에 이웃의 대전은 한밭이라 하여 그저 널은 밭이 있었을 뿐입니다. 일제가 놓은 철도가 공주 유림의 반대로 논산을 거쳐 대전으로 가는 바람에 공주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 오게 되었습니다.

 

철도는 반대했지만 도청소재지가 대전으로 옮기는 것에는 극열하게 반대했는데 이 사건은 일본 본토까지 떠들썩 하게 했다고 합니다. 아래 금강대교는 도청을 옮기면서 일제가 공주 주민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로 건설되었는데 6.25 전쟁 때 파괴되고 사진의 다리는 전쟁이 끝난 1956년도에 새로 놓았습니다.

 

 

 

 

공주! 하면 교육의 도시라고 하는데 대구교대와 견주는 공주교대 때문도 있지만 전국에 몇 안 되는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영명학교가 더 역할이 큽니다. 공주에는 카톨릭의 순교 성지가 있는데 공산성을 마주보고 있는 황새바위라는 곳에서 수백명이 참수 당했습니다.

 

 

충청도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화를 내시겠지만 충청도 사람들은 속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며 음흉스럽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속을 들어 내지 않는 것는 맞지만 음흉스러운 것은 아니고 애초에 '자기 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충청도는 역사적으로 일인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김종필이 그렇고 이해찬이 그렇습니다. 을사오적의 한 명인 박제순은 공주 순찰사를 지내며 동학농민혁명군을 무참하게 학살하여 승승장구를 했지만 이완용보다는 더 알아 주지 않는 2인자일 뿐 입니다. 역사적으로 충청도에서는 반란이나 혁명이 일어 난적이 없습니다. 주로 대세를 따라가는 편입니다. 동학혁명이 공주의 고개 우금티를 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천안이 영남과 호남의 길이 만나는 곳이라면 공주는 전라도를 오가는 길목입니다. 공주는 충청의 정서와 전라도의 한을 함께 담고 있는 도시입니다.

 

신행정도시로 공주는 역사의 장에서 다시 부활하려고 합니다. 대전을 배후도시로 관료중심의 지식기반 사회가 형성되면 공주는 백제의 영화를 다시 구가할 수 있습니다. 케스팅보드 역할에서 일약 중심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곳 공주는 조용하기 그지 없습니다. 또 속내를 들어 내보이지 않는 것인지...

하도 대도시에 빨려 댔기에 생각조차 없어 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수도가 이전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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