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괴물이 된 한국 기독교

두 아들 아빠 2008. 5. 30. 21:15

 

한국 기독교는 분단의 상처를 가장 많이 입었다. 해방후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의 좋은 점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증오와 탐욕으로 점철되어 있다. 해방 당시 기독교인 30 여만명 가운데 20 여만명이 북한에 있었는데 북한 기독교인의 대략 50 %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월남해 남한 기독교 여론뿐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였다(한겨레 기사 참조). 그들은 역시 기독교도이자 독립운동 진영에서 가는 곳마다 분열의 원인이었던 이승만(그는 친일파의 본산인 경찰권력과 철저히 밀착했다)에게 협조하면서 반공이라는 증오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 결과 한국 기독교는 괴물이 되었다.

 

증오의 포로가 된 '사랑의 종교' 기독교는 4.19 혁명의 열매만 누린 친일파 윤보선-장면 정부에 이은 쿠데타 정부 박정희(아시다시피 일본군 장교다)의 거짓말과 부패,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 자기 반성 없이 세속 권력에 영합해온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괴물스런 모습은 오늘날 뉴라이트를 이끌고 있는 김진홍에게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서 말씀처럼 숨겨진 것은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세속주의-물량주의뿐 아니라 수구 친일 부패세력과 영합하여 온갖 특혜 속에 권력의 핵심을 차지함으로써 지상 천국을 완성했다. 그것은 배타적이고 속물적인 지상 천국처럼 보인다. 왜냐 하면 그들만이 두당 수십 억 원씩의 소유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천주교 세례를 받았으나 한국 기독교의 가장 자랑스런 부분을 체험했으니 그것은 자발적 학습과 자주적 도입의 전통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독재-반부패 투쟁의 모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40 년 가까이 믿어온 천주교 출석을 포기한 것은 내게도 일부 원인이 있지만 교회 안에 진정한 기쁨을 체험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찾던 것을 나는 불교와 한국 전통 신앙 속에서 찾았고 다시 기독교 속에서 확인하였다. 기독교의 핵심에는 그들이 실천하지 않고 있는 '사랑의 가르침'뿐 아니라 '비움의 가르침'이 있다. 기독교는 육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을 비우고 버리는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 기쁨은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비울 때만 가능한 것이며 그 경험은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도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그 가르침과 반대로 살고 있다.

 

또 금강경은 선행을 하되 한다는 생각이 없이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같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모든 선행을 떠들석하게 생중계하듯 한다. 그것은 마치 북한에 식량 원조를 하되 북한의 자존심을 긁어가며 주려는 이명박의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배운 전교의 모범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삶으로써 사람들이 그 표양을 보고 입교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전교 방법은 공격적인 기업 마케팅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움'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한국 기독교는 탐욕의 종교다. 그들은 구원의 증거 내지 징표를 세속적 성공으로 확인한다. 그들에게는 남보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구원의 징표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는 이미 하느님의 축복과 구원에서 제외된 자이다(지난 대선 즈음에 일부 목사가 실제로 그런 설교를 했다). 이 모양이 된 것은 그들이 북한에 두고온 자산과 가족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문제의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다. 한국 기독교가 진정 요한복음 12 장 25 절의 말씀대로 자기 목숨을 미워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천주교는 이벽을 태두로 하는 천진암 학습공동체의 전통을, 개신교는 서상륜 백홍준의 자생적 예배모임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박정희에 대한 반독재 투쟁의 역사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