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인정하지 않은 가정 이야기

아버지의 길 아들의 길

두 아들 아빠 2008. 11. 13. 10:32

 

필자가 도로공사 현장소장을 할 때 이런 질문과 말을 들었습니다. 통행량도 많지 않은데 ‘잘 뚫린 고속도로 옆에 나란히 같이 가는 국도는 왜 만들었냐? 예산 낭비가 아니냐!’

도로란 이미 정체가 일어난 후에 건설을 하면 경제적 실효를 걷을 수 없습니다. 건설에 장기간이 필요하여 완공하고 나면 또 다시 정체되는 수도 있습니다.

 

도로는 기능상 분류가 있는데, 장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하는 도로와 접근 기능을 더 중시하는 도로가 있습니다. 앞에 것은 고속도로라 하고, 뒤에 것은 국도와 지방도로 구분됩니다. 또한 사람과 차량이 이동하는 길은 무료도로가 반듯이 있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세금을 거둬 드리면서 마치 산적 떼처럼 고갯길을 지켜 서서 통행세를 뜯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 안에도 이와 같은 두 가지 도로가 존재합니다. ‘아버지의 길’이 있고 ‘아들의 길’이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아버지의 길은 무료 도로인 국도고, 아들의 길은 통행세를 꼬박꼬박 아버지가 대신 물어야 하는 고속도로 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나란히 달리거나, 옆 눈에 들어오니 같이 달리는 것 같아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두 길은 같이 달리다가 서로가 위아래로 겹치기도 하고 시야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지만 결코 같이 만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같이 가는 길 같지만 전혀 다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길 자체가 다르기에 속도도 다를 뿐 아니라 쉬는 장소와 방식까지 다릅니다. 아버지의 휴게소는 국도변의 한적하고 소박한 휴게소고, 아들의 휴게소는 번잡하고 세련된 휴게소입니다. 비정상적인 경우인데 아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아들은 국도도 아닌, 비좁고 먼지 나는 농로 길을 달릴 때 자수성가 형 아버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넌 왜 맨 날 그 모양이냐!”

 

인생의 여정에는 논스톱의 하이페스 구간은 없습니다. 그런대도 자기자식에게 하이페스로 달려주려는 얌체 같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들도 국도로 내려와야 하는 시기인데도 통행료를 계속 물어주는 미련한 아버지도 있고, 규정상 달리 수 없는데도 백을 써서 뻔뻔스럽게 버스전용차선으로 아들을 달리게도 합니다. 나중에 다 대가를 치를 일입니다.

 

아버지가 달리 던 도로는 법규도 다르고 신호체계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줍지 않은 아버지의 경험이 아들에게 잘못 전달되면 엉뚱하고, 원치 않았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자기 방식이 계속 통 할 것이라는 우매한 믿음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의 끝은 막혀있지 않고 반듯이 국도로 연결 됩니다. 다음세대를 열 아들이 고속도로에 오르면 아버지는 국도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아들을 눈 옆에 두고 같이 달리다가 아버지는 도로의 종착을 맞게 되고, 아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아버지와 같이 국도로 내려오게 됩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의 길도 같이 않은 게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아버지의 길과 아들의 길이 다르다는 것만 인정해도 부자지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