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인정하지 않은 가정 이야기

무자비한 천국! 가정(2)

두 아들 아빠 2009. 1. 12. 09:18

  가정에 대한 또 다른 신화적 믿음은 ‘정상가족 또는 전형적인 가족의 신화’다. 부모와 자녀가 온전하게 다 있어야 가정이며 가족 구성원 중에서 결원이 생기며 바로 결손 가정이라고 하며 동정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혀를 찬다. 심지어는 손가락질까지 한다. 또한 그러한 가정 구성원은 스스로가 부끄러운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도움이 주지 않는 값싼 동정은 자기 위안이며, 손가락질이야 말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사람의 목숨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행하는 것으로 망령되고 죄악 되어 자기 벌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가족도 언제든지 결손 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불행 자체는 아니다. 사람들은 '힘듬'과 '편함'은 구분해도 ‘힘듬’과 ‘불행’이 어떻게 다른지 살피지 못한다. 구성원의 결원이 곧 결손가정이 아니라 비상(非常)적인 가족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은 있지만 다 살아가게 되어있다.

 

오히려 부모를 일찍 여윈 자녀는 일찍부터 독립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다. 부모의 재산을 믿고 무위도식하는 자식을 둔 부모는 그 상황이 얼마나 지옥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게 본인은 물론 가족 전체에게 더 불행한 상황일 수 있다.

 

  신앙심이 깊고 양심적인 한 가장이 사고로 죽었다 치자, 그 자녀들은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왜 저의 아버지를 대려 가셨나요?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런 자녀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매일매일 감사함을 느끼고 기도했을까요?

 

부모의 죽음과 자녀의 죽음은 또 다른 차원이다. 오죽하면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슴에 묻는다.’고 할까! 그런 부모 역시 자녀가 살아 있을 때 진실로 감사 기도를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정상가정이라고 하더라도 가족 구성원이 한 지붕 밑에서 모두 함께 사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기러기 아빠들처럼 일찍부터 상당기간 떨어져 지내기도 하고, 기숙을 하는 특목고에 자녀가 다니면 졸업 후 타지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이후 군대를 간다면 불과 15년 정도 함께 사는 일이다.

 

  전형적인 가족의 신화는 가장을 중심으로 어머니는 차 상위 권력자며 자녀들은 그 밑에서 돌봄을 영위하다가 부모가 늙어서 생활 능력이 떨어지면 자식들이 돌봐야 한다는 도식적인 사고다. 개인은 사회와 국가의 일원으로써 살아 갈 수밖에 없는데 실컷 부려 먹다가 결국엔 그들 가정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기득권이나, 지배 계층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일반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돌보기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유교의 효 관념을 불어 넣어서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짓이다.

 

효도란 부모가 늙거나 죽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부모 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을 때 해야 한다. 부모 또한 그때가 자녀에게 가장 집중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둘 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녀가 결혼을 한 후에 예전에 못한 부모노릇을 하고, 자식은 자라면서 못 받은 부모의 인정을 남의 집 딸을 동원해서라도 받으려고 한다. 둘 다 헛짓이다. 아내를 억울하게 하는 짓이다.

 

  선진국의 경우 사회활동을 일정기간 한 사람에게 국가가 주도적으로 노령의 국민을 책임진다. 그게 더 훨씬 효과적이며 효율적이다. 후진국일수록 기득권의 부의 착취로 인하여 개인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게 마련이다.

 

정상가족 또는 전형적인 가족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은 일시적이며 다만 확장의 개념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혀를 찰 일이 아니고 스스로 불행한 일도 아니다.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면 삶이 그리 힘들거나 두렵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