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인정하지 않은 가정 이야기

무자비한 천국! 가정(4)

두 아들 아빠 2009. 1. 1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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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세 가지 잘못된 신화를 바탕으로 마지막으로 ‘가족은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집단’이라는 신화를 세운다. 여기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말이 있다. 바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로 ‘네 식구가 원수다.’ 예수는 가족에 관하여 이렇게 단정적으로 본질을 파해졌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우리의 부모들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일찍이 예수의 말씀을 알았는가 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원수라 부르는 자식도 부모를 원수라고 생각하는데...

 

  유교의 가족관은 가족의 다스림인 가정(家政)을 중시하여 ‘가족은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집단’이여야 한다는 전제로 가족 구성간의 지침서를 삼강오륜을 통해 부위부강, 부의자강, 부부유별, 부자유친 등을 설파 했지만 지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수의 ‘네 식구가 원수다.’만은 아직 시퍼렇게 살아서 가정 구성원을 어렵게 하고 있다.

 

  가족이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집단이라고 하려고 가족은 독립적이고, 정상적이어야 하며,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세 가지 전제를 깐 것이다. 결국 가족 내 질서를 잡기 위한 주문인데 여기에 억울함과 이로 인한 분노가 있기 마련이다.

 

간혹 훌륭한 인격자인 어른이 집안 통솔을 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대가 확장되고 구분되면 나이 많은 어른이 집안 모두를 다 살피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목과 그 안에 억울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이 자기에게 무뢰하게 대하면 만나지 않으면 되고, 실질적인 피해를 주면 법에 고소하면 된다. 하지만 가족끼리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적인 정서는 ‘집안일은 방문턱을 넘기지 말라!’는 잘못된 주문과 문화적 인식이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지 않는다.

 

예전에 이웃의 부엌에 밥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면서도(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완전 노출) 가정사만큼은 끼어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각자 가정의 다스림이 있고, 그 안에는 자신들도 저지르는 반칙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방문턱을 넘기지 말라!’는 자기 집안의 흠을 밝히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어지간해서는 자기 집안 일로 타인을 어렵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류의 큰 변화 중에 하나는 대가족의 와해다. 대가족 제도는 농경문화에서 일손을 충당하기 위하고 공동체적인 삶이 효율 적이어서 이루어졌지만, 생산물이 삶의 터전 주변인 농토에서 나오지 않는 산업화에서는 핵가족화 되었다.

 

대가족 제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는 각자 집안의 법과 질서가 있었지만 핵가족화 되면서 그런 전통은 사라지게 되었다. 핵 가정 내에 문제가 생기면 외부로부터 어떤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더욱 골이 깊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즈음 가정들은 점점 폐쇄적으로 가고 있다. 아파트 현관문은 불을 차단하는 방화벽 기능 뿐 아니라 이웃과 철저한 단절의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

 

  ‘가족은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집단’이 아니라 ‘극히 불안정하고 부 조화로운 집단’이라 전제 해야 맞다. 그리고 영원불변이 아니며 일시적이며 다만 확장의 개념이 있을 뿐이다. 최초의 이웃은 자녀의 새 가정이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의 ‘네 이웃’은 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은 각기 전혀 다른 인격체라 서로에게 깊은 배려와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