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인정하지 않은 가정 이야기

변화에 느린 사람은 누구일까?

두 아들 아빠 2009. 4. 25. 13:01

사회적 집단으로 보아서는 ‘권위적인 기관’, ‘남을 가르치는 집단’이 변화에 느리며, 일면 변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앞의 예는 공직자 집단인데 특히 검찰, 군대가 그렇고, 뒤는 학교, 목회자 그룹이 그렇다. 권위적 집단은 변화가 곧 ‘권위의 하락’으로 알고 경계하며, 남을 가르치는 집단은 변화가 ‘가치의 손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군인의 아들'과 '선생의 딸'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가정에서는 권위와 가르침을 함께 하려는 가장들이 변화에 무디고 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는 가치에 따르는 문화가 있는데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예전엔 밥그릇에 붙은 밥알을 남김없이 먹어야하는 것이 식사 예절의 절대 가치었지만, 가족의 외식 한 끼에 쌀 한말을 먹어치우는 시대에 이런 가치를 들이 밀면 요즈음 아이들은 의아 하다 못해 웃기는 말로 들린다. 부모가 하도 뭐라고 해서 긁어 먹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수긍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우리 사회는 반세기 동안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아이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많다. 세대의 단절이 한 지붕 아래서도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12세가 넘으면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끼리만의 가치와 문화를 누리고 살아가겠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상황에서 남편과 아내의 괴리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남은 인생이 갑갑한 일이다.

 

남자들은 권위와 가르침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근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변화에 대한 준비와 채움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권위와 가르침을 할 수 없다고 느끼면 남자들은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과 가정에 무관심을 보이는 일이다. 아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이 가정을 생각이나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아내들도 착각과 오류를 저지르기도 한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변화에 빠른 자기는 생각하지 않고 변화 되지 못한 남편만 탓하는 일인데, 어차피 젊은 사람들이나 자녀가 볼 때 부부나 부모는 둘 다 거기서 거기다.

남자들, 특히 가장에게는 천부적으로 권위와 가르치는 사명도 주어졌다. 그런대 주어진 권위보다 오버하고 가르칠 실력이 없어서 문제가 된다. 여기에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켜야할 가치와 변화돼야 할 부분을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결정적인 어려움이 있다.

 

자신도 자기에 대한 신뢰도 없으면 누굴 믿으라고 하면 머리를 흔들고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또 믿음도 없는 자기 자신에 함몰된다. 그러면서 업어지고, 자빠지며 자기도, 가족도, 남들도 어렵게 한다. 사람이 남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다. 그런데도 자기는 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대한민국의 중년의 가장들이다. 무엇을 변화 시키고 어떤 가치는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단어장 외우듯이 할 수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