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6.25 때 공주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

두 아들 아빠 2009. 7. 5. 23:17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금강변 '왕촌 살구쟁이'라는 곳에서 국가가 저지른 끔찍한 집단 살해 사건입니다.

사건은 1950년 7월 7~9일 경에 공주교도소에 있던 좌익수들과 공주 인근의 보도연맹들에게 자행된 한국판 킬링필드입니다.

 

공주교도소 수감자 중에는 여순반란 사건으로 끌려온 사람들이 었었는데 거의가 어린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접수되어 개토제를 하고 지금 유해 발굴작업을 한창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가 예산을 삭감해서 올해가 끝이라고 합니다.

 

사건 당시의 사진은 우리나라 사람이 찍은 것이 아니라 영국기자가 이 찍은 것인데 최근에 공개된 것입니다.

미국은 50년이 지난 정부 기록물을 공개하고 있는데 한국의 보도연맹 사건만은 제외 시켰습니다. 미군의 인정하에 학살이 자행된 일로 남한 전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입니다. 그 때 생존자들로부터 '미국 놈 믿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공주에 이사온지 1년도 되지 않은 저도 여기가 금강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학살 대기 중인 좌익수들입니다.

 

 

확대한 사진인데 유가족들이 유일하게 얼굴이 나온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의 확인하고자 함인데

사진을 찍으며 포즈를 취하라고 했는지 학살을 앞둔 자의 빙긋이 웃고 있는 표정을 보면서 소름이 끼칩니다.

당시 공주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좌익수로 분류된 사람들을 대전 형무소로 이감 한다고 하면서 끌고 와서 공주 시내를 조금 벗어난 산작로 옆 산으로 끌고가 집단 총살을 했습니다. 태양의 그림자로 보아 한 낮 같은데 점심은 먹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충남 관용'이라고 쓴 트럭에 빼곡히 태운 좌익수들입니다.

뒷사람들의 팔의 모습이 영켜있는 것을 보니 네, 다섯 명을 한번에 묶어 놓은 것 같습니다.

트럭에 올라 타고 있는 네명의 감시인들은 철모와 경찰모, 군모 등 다양한 복장인데 경찰관, 교도관, 군인 등 합동이라고 합니다. 대기중인 앞 차가 멀리 보이고, 그 앞의 차는 구덩이에 몰아 놓고 총살을 진행 중인데 총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의 도로는 현재 포장도로가 아니라 강 아래 쪽이었던 것 같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뼈로 추정합니다.

 

 

의족의 모습이 점점 들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조악하기 그지 없지만 당시엔 상당한 기술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일제의 제품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부유하게 산, 왼발이 없는 장애인도 무참히 죽었습니다.

 

 

 

<전쟁 경험을 인터뷰할 때마다 많은 이들이, “똑똑한 사람은 다 갔어. 쭉정이만 남았어”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공적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그래서 이웃과 함께 아파하고 분노하며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다른 호명일 뿐입니다.

 

전쟁 후 정치 냉소주의, 패배주의가 만연한 것도 진보주의자였건, 보수주의자였건 우리사회의 정치를 이끌어 가야할 의로운 사람들이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대부분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후, “나서지 마라, 패가망신한다”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가게 글 펌)

 

오늘 오후에 그곳에 다녀 왔습니다. 59년 후의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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