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효도가 사람 죽이네

두 아들 아빠 2009. 7. 20. 13:01

이혼 가정의 이유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댁이나 처가의 갈등이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경우가 상당수 차지 한다. 대게 효도를 강요하거나, 독립된 새가정에 부모 가정이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의 유교적 상황에서 효도는 인륜의 최대 덕목으로 친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불효자는 가슴 한 구석에 늘 찜찜함이 있다. 과연 효도가 인륜의 최고 덕목이고 이를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살펴보자.

 

독재의 뿌리 깊은 악행

 

사회학적으로 살펴보면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 은연중 효도를 강조했다. 그런데 '효'라는 사다리를 끝까지 올라가 보면 '충'이라는 놈이 내려다 보고 있다. 불의하게 잡은 정권을 분칠하기 위해서 인륜을 들이민 것은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가 농경에서 산업화로 가는 과정 중에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군사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불의를 분칠하기 위해서 효도를 강조하다 보니 효에 대한 사회적 관념을 바꿔야 할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그 이전에 일제시대에도 구사되었다. 제사를 모시러 간다는 한국관료에게 일본인 상관은 차비까지 주어서 보내주었다고 하는데 이는 일제가 제사를 적극 장려한 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다하고 제사를 모시는 사람이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이 엄청나게 변화된 사회와 의식을 무시하고 그저 고전적인 효를 강조하다 보니 부모와 자식 둘 다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효가 되어 버렸다. 이런 말을 속으로는 동조해도 어른들 앞에서 쉽게 꺼낼 수 없는 것이 아직 한국사회의 정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가면서 삶의 터전이 농촌에서 도시로 옮기게 되었고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이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환된 일이다. 농사의 기술을 부모에게 전수 받는 일은 먹고 사는 방편을 부모로 부터 직접 배운 것이다. 여기다 땅을 가업으로 이어 받고, 사는 집까지 물려주었다. 이런 부모에게 삼년 상을 치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절대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는 대가족을 해체하면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됬는데 효에 대한 관념도 사뭇 다르게 되었다.

예전엔 부모에게 조석으로 문안 인사를 드렸으나 이젠 명절 때 알량한 선물을 들고 찾아가 뵈면 잘한 일이다.

 

효도와 부모의 도리

 

자식이 보모에게 효도를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며 유교뿐 아니라 세상의 어느 종교도 이를 강조한다. 부모로에게 생명을 얻었고  헌신적인 양육을 받아 커가면서 부모로부터 세상을 배웠기에 그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도 마땅하다.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도 있지만, '자식의 덕을 보려는 마음은 도적의 마음'이라고 부모들에게 분명한 권면을 주고 있다.

 

효도는 부모가 늙어거나 죽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 밑에서 자랄 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부모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속을 썪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 밑에 있을 때는 어리기에 생각이 유치하고, 의지가 박약해 부모의 마음에 들지 못하게 된다. 이를 부모들이 살펴서 자식을 온존히 키워내야 할 의무가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한 존재로 끌어 올리는 과정 자체가 사랑이다.'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세긴다,

 

교육을 내려 놓고 오로지 돈으로만..

 

과거 절대 신적인 존재의 부모와 오늘 날의 부모는 많은 차이가 있다. 먼저 현재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절대자적 위치를 고수하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사는 방편을 가르치는 일을 남에게 모두 넘겨 주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포기는 큰 권위를 내려 놓은 일이다. 험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벌어 온 돈으로 자식에게 처바르기만 할 뿐이다.

 

부모가 절대적 위치에 있을 때는 자녀를 많이 낳았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부모로써 권위가 서지 않아,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녀의 수는 대폭 줄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효도를 하지 못한 부모가 자녀에게는 효도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효에 대한 관념이 혼돈되었다. 광고에서는 자식들이 보일러를 놔 드리는 것을 효라고도 선전한다. 사실 그게 현대의 효도인지도 모른다.

 

바꿔야 할 효도의 개념과 방법

 

노년의 병은 여러 가지여서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 보다는 전문가가 돌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이다. 그런데 집에서 부모를 모시지 못하면 불효 자식이라는 관념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대가족 제도에서는 집안에 연장자가 많으면 그만큼 삶의 지혜가 많아 좋았지만 산업화 된 사회에서 교육을 모두 학교에 맡기는 시대에, 한 가정 안에 아버지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옛 경험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용과 효률을 극대화 시키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또한 도시와 농촌이 아직 공전하는 우리 사회에서 효의 개념 변화가 사회적 합의를 보기가 어려웠다. 고전적 효와 현대적 효가 공존하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고전적인 효가 우세했었다. 이렇게 비틀어진 효를 사회변화에 적응이 빠른 여성들은 즐거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겉과 속은 다 현대적인데 여성들에게 효도 만큼은 고전적으로 요구하고, 남성들은 사회나 국가가 고전적 효도를 요구하니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내와 갈등이 일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신 자기 부모의 제사날을 자기는 챙기지도 않으면서 아내가 잊어 버렸다고 사랑해야 할 아내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심지어는 두들겨 패기도 한다. 뒤틀려진 효도가 산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참극이 된 일이다. 죽은 자가 산자 보다 중하지 않는 일이다.

 

삶의 터전이나 기반이 전혀 다른데도 꼬박꼬박 찾아가 뵈야 하는 것을 당연한 효도로 알고 있다. 여기에 시부모만 부모냐는 이내들의 이유있는 항거에 오늘날의 남자들은 본가와 처가 둘 다 챙기느라 힘들게 되었다.

 

부모가 자기 몸을 움직여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면 그런대로 살게 되는데 기력이 다하고 몸이 성치 않으면 전문가가 있는 시설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가고 있다. 그렇지 않고 지식들의 수발을 바라는 것은 모두를 어렵게 하는 일이다. 지방에 경치 좋고 접근성도 괜찮은 곳에 노인요양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옆에 장례식장 까지 있어서 좀 걸리기는 하지만, 아들 힘들게 하고, 며느리 눈치를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노년이 어려운 이유

 

문제는 자신이 늙지 않았고 그래서 노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싫다는 노인들이 문제다. 늙음이 어려운 이유는 기력이 빠지고 젊은 사람들이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늙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더 어려운 일이다. 그 다음은 자기 아내와 한 몸이 되지 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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