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과거는 짐이 아니라 힘이다. (2편)

두 아들 아빠 2009. 7. 20. 17:30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처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마다 상처에 대한 반응과 작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두고 각자가 스스로 상처의 크고 작은 차이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입은 상처가 적절히 치유되거나 정리되지 못하면 나중에 자신도 모르는 방식으로 들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시기는 자신이 어느 정도 사회적이나 가정에서 지위가 있을 때입니다. 그 이전에는 눈에 띄게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단연 불혹의 나이에 많이 나타나고 여성의 경우는 현실 적응이 남성 보다 빨라 자신과 같이 깊은 상처가 있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이 약하기는 하지만 남성보다 정신적으로 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자기 상처를 배려 없이 함부로 남에게 말하는 사람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들을 준비도 안 된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을 당혹스럽게 하는데, 아주 당당한 사람 같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전형적인 예입니다. 어쩌면 말로 하는 과거의 상처보다 더한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은 남이 자기 이야기를 듣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일종에 자기만의 카타르시스 느끼기도 합니다. 일종에 자해행위에서 쾌감을 느끼는 매조키스트와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방치와 방관, 편애와 학대, 폭력에 시달려 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름 치유하는 과정으로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비장이나, 극적으로 몰아가는 사람

 

또 다른 현상으로는 남에게 우러러 보일 정도로 자신의 삶을 비장이나, 극적으로 몰아가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자기를 범접하기 어려운 위치에 올려놓고 때때로 혼자서 안에 있는 상처를 꺼내 어루만지기도 합니다. 남위에 서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과거를 잊으려는 시도인데 그게 언젠가, 어떤 계기로 남에게 통하지 않아 이로 인한 심한 고립감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빠지게 되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우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몰아간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정상적인 성행위 보다는 자위행위나 변태적 성행위를 선호하고 이를 통해서 실제로 만족감을 더 느끼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가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입니다.

 

양자의 경우 열정적인 사람이라면 평소에 남을 돕는데 적극적이고 자신의 삶도 활기차게 살아서 남에게 작은 불편을 주는 정도는 허용됩니다.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일이 없기에 그런 사람을 ‘이상하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일 경우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고 주기적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자주 해야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인격자와의 교제만큼 정신건강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정신병은 피해는 인격자와 단절에서부터 오게 됩니다.

 

과거가 짐으로 남아 현재를 억 누르는데 과거의 상처가 기억 속에서만 있지, 실제는 자연 치유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기억과 남은 상처는 같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큰 외상을 입은 적이 있는 사람이 오랜 세월이 지나 상처가 내, 외과 적으로 완벽하게 치유 됐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상처 부위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실제로 통증을 느끼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상처가 다 나았다고 그 부위를 일부로 험하게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앞의 예가 그런 경우인데 심하게 말해서 조폭이 자신의 상처부위를 길거리에서 마구 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과거의 문제로 치유되기 어려운, 영혼에 깊은 상처로 계속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성에 관 것과 심한 폭력을 지속적으로 당한 경우인데 전문적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렇게 한 사람에 대해서 원망이나 복수심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자책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상에 복수심을 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이코 페스라고 하는 살인마들이 대게 이런 경우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성폭력과 육체적인 폭력은 둘 다 온전한 자아를 완전히 무너트리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속으로 주문 처럼 해야 할 말은 실제도 그렇지만 “내 죄와 내 잘못은 아니다.”입니다.

 

전혀 다른 예이지만 군인과 교수, 법관, 검사, 목사, 선생 등등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고 엄격한 부모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자아가 채 발달하기 전인 10살 이전에 혹독할 정도의 규율을 요구 받고 훈련받았다면 그 땐 자아 뿐 아니라 자기 방어기제가 채 발달하기 전에 무력화 시킨 일이라 커서도 자연적인 치유가 어렵습니다.

 

무의식중에 잠재되어있다 언젠가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자기를 그렇게 한 부모가 없어지거나, 어른이 되어서 그 사슬에서 벗어나면 형편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억압의 압력이 빠진 일로 마치 크게 불은 풍선의 입구를 꼭 잡고 있다가 순식간에 놓았을 때 벌어지는 현상과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도 결혼을 아애 하지 않거나 해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와 같은 훈련을 받은 짝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훈련의 강도는 자아의 발달 단계에 따라서 올려야지 너무 어릴 때 요구하면 나중에 치러야할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군대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집단적으로 당했다 해도 모두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지지 않은 이유는 그만한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초등학생들을 군대와 같이 했다면 그들이 어른이 되어서 나타날 사태는 끔찍할 것입니다.

 

과거의 치유는 참여정부에서 정책으로 제시 된바 있습니다. 바로 '진실 화해를 위한 역사바로 세우기 위원회' 구성입니다. 과거의 진실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기가 당한고 처한 상황 전반을 진실되게 규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럴 수 밖에 없던 정황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겪고 극복한 사람이 또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어렵게 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과거가 힘이 되지 못한 경우입니다.

 

그런 이유는 어른이 되어서 논리적인 사고로는 다 납득이 되고 용서도 할 수 있지만 너무 어렸을 적에 받은 깊은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대게 자기방어기제가 함몰되었거나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60대가 어렸을 적에 처한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들 스스로 미친듯이 앞만보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단적으로 자수성가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아픈 과거가 힘이 되지 못하고 광기로 표현되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그나마 유지 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내려 온 전통과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보편적 가치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가 비록 높은 수준이 아니더라도 어긋난 개개인을 붙잡아 주는 힘은 지대하기 때문입니다.

'가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친구들  (0) 2009.10.25
대한민국 남자들의 효자 컴플렉스  (0) 2009.08.17
효도가 사람 죽이네  (0) 2009.07.20
과거는 짐이 아니라 힘이다. (1편)  (0) 2009.07.15
어린이날의 단상  (0) 200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