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연속적인 자살이 베르테르 증후군이라고?

두 아들 아빠 2010. 3. 29. 23:00

베르테르 증후군이라는 말은 괴테 당시에 나온 말이 아니라,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한 말이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에 출간 되었는데 정확히 200년 전의 책 제목에서 따 온 그의 아이디어가 연구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36년 전의 미국 사회학자의 이론을 접목시키려고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의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사회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에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의 이론은 발표 이후에 미국사회에서 입증을 점점 더해갔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의 자살 모방과 베르테르의 효과와는 사뭇 다르다. 베르테르가 실존하는 인물도 아니고, 책 속의 주인공의 자살을 따라했다는 것은 옛 유럽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감성적이지 않았나 싶다.


괴테는 약관의 나이에 독일문학계에서 일었던 ‘질풍노도운동’의 선두주자였는데 25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썼다. 그런 그는 당시에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나이인 83세까지 살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사춘기도 그렇지만 프로이드와 쌍벽을 이루는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20대가 정체성 문제로 가장 불안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그 나이에 있던 괴테가 가장 불안한 심리를 파악했기에 명작이 되지 않았나 싶다.


모방 자살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감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실토한다.

유명인의 죽음을 그저 따라하는 멍청한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목숨을 소중이 여기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그런데 연예인이 죽었다고 보통사람들의 자살을 단순히 ‘모방’으로 폄하는 것에 분노심이 일어난다. 차라리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렸다.’면 모르겠다.


울고 싶은 이유를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병으로 몰아가는 것도 그렇다. 사람에 따라서 성장과정이나 처해진 환경, 스트레스에 저항하는 정도가 다르게 마련이다. 그런 것을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것은 예방치원에서도 옳지 못하다고 본다.

 

이 세상의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