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지방, 농촌

부여 금강변의 반조원리를 아십니까?

두 아들 아빠 2010. 5. 8. 15:40

아래 그림은 지금으로 부터 약 250년 전에 부여군 세도면 반조원리를 배경으로 한 겸제 정선의 산수화다.

 

 

절벽 우측은 금강인데 오늘 어렵사리 그 곳을 찾아 갔다.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고 있다. 위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맨 좌측 가옥의 대문이다.

 

 

 

 그림과 비슷한 앵글을 잡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림은 강 쪽으로 비껴 높은 곳에서 그린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그런 곳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나누어서 찍어 보았다.

 

그림의 나무 세 그루 

 

 그림의 나무 우측의 가옥은 삼의당이라고 하는데 표석과 주추돌만 남았다.

 

 

 

그림의 절벽과 강, 뒷 배경

 

 

 

겸제 정선(1676 - 1759)

 

1676년 (숙종 2년)에 출생하여 1759년 (영조35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는 원백, 호는 겸제 또는

난곡이다. 그의 가문은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서 20세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고,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다. 처음 그도 정형산수를 그렸으나 당시의 사회 기운과 실경의 화회적

구상화욕구가 결합하여 한국 산수의 특징을 살린 '진경산수'라는 겸제 특유의 화풍을 고안하게

된다.

그림의 상단 우측 한자는 '임천고암'으로 (충남 부여군 세도면 반조원리옛 지명)이며 겸제 (謙濟) 삼종질(三從姪)

삼회제(三悔齊) 정오규(鄭五奎)의 은거생활을 그린 전경이다, 지팡이를 짚고 정자관에 도포를 입은 선비가 바로 삼회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