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전문화가 개인과 관계성에게 끼친 영향

두 아들 아빠 2010. 6. 4. 22:35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개인이 거의 모든 것을 다 해냈다. 여러 가지 농사도 짓고, 옷도 만들고, 일상생활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만들기도 했으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기는 했으나 자기 집도 지었다. 그야 말로 의식주 전체를 망라해서 만능이었다.

 

그러다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은 분업과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현대인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졌다. 살림을 하는 대다수의 주부들은 예전에 주부들이 기본으로 하던 장 담기를 할 줄 모른다. 여성들 뿐 아니라 아파트에만 살아 온 남자들은 벽에 못질도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반대로 대중의 다수가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새롭게 생겨났다.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운전’이다. 다음으로는 ‘컴퓨터’가 아닌가 싶다. 예전엔 고도의 기술이 대중화가 된 일이다.

 

 

전문화로 전반적으로 삶과 생활이 여유롭고 윤택해 진 것은 틀림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보면 반찬가게가 그렇고, 운동화만 빨아 주는 세탁업도 생겨났다. 하지만 악과 죄책감을 지워버리거나, 덜어 내버리는 아주 좋지 못한 상황도 벌어졌다. 대량 살상 무기를 설계하거나 만드는 사람은 그리 큰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이를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도 명령에 의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좀 연관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러 교회 건축을 총 관리하는 직책에 있던 적이 있는데 재정 담당 장로가 궁색해 지면 목회자를 핑개대고, 목회자는 까다로운 성도나 직분 자를 핑개댔다. 그러다 안 되면 실체도 없는 교회 전체에게 미루고, 그래도 안 되면 하나님을 팔았다. 어떤 목사들은 자신과 교회를 혼동하거나, 자기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엮어 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보았다.

 

 

전문가라는 칭호를 사람들은 좋아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권위를 얹어 주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외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들끼리 뭉쳐서 타인을 억압하거나 이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나쁜 점만 있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소신을 바탕으로 한 소명의식을 발휘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사회가 언 나가지 않게 잡아 주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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