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아들 친구의 죽음

두 아들 아빠 2010. 6. 20. 21:26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학자분이 내 집에 오셨다. 두 아들이 그분과 내가 함께 한 탁자에 바짝 다가앉은 것은 아내가 정성스럽게 깎아 놓은 과일 때문만은 아닐 게다. 전날 큰 아들은 짝의 주검을 보았다. 며칠 전 우리 집에서 파 닭을 같이 먹고 간 아들 친구의 죽음에 아들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큰아들은 일요일 오후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삼십 여명의 아들 친구들은 영정 앞에서 모두 울었고 나도 울었다. 아버지는 양말바람으로 2층의 장례식장과 영안실을 오가며 “아들 보고 싶어” 라며 울부짖었고 어머니는 혼이 나간 사람 같았다. 손을 잡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내 속을 썩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공부만 한 아들입니다.”

 

나는 장례식에서 술은 마셔도 식사는 일부러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거기 가서 밥을 먹고 싶었다. 아들은 나와 등을 지고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는데 머리를 돌려서 하는 말이

“아버지! 저희 술 좀 갖다 주세요!” 하는 게 아닌 가, “무슨 술을...” 부정의 말이 긍정이 되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냉장고에 가서 맥주 두 병 꺼내서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의 말과 연이은 내 행동으로 아들 친구들은 약간 술렁였지만 병을 건데 받은 아들과 친구는 숟가락으로 능숙하게 마개를 땄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자식의 죽음은 아비의 가슴에 묻을까?

천부적으로 해야 할 자기 사명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온 아들과 그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하지 않았을까 한다.

“내가 죽으면 우리 부모도 저렇게 슬퍼하시겠지!”

장례식장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은 거의가 눈이 충렬 되었거나 울면서 나갔다.

 

입관을 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 영안실로 갔다.

나도 따라갔다. 사고로 눈언저리에 상처가 있었지만 평안해 보였다. 나는 순간 아들을 부를까, 말까 생각하다가 아들을 불렀다.

“네 친구 마지막으로 봐라!”

아들은 유리창 바로 앞에 누어있는 친구를 보며 울부짖었다.

다음날 아들은 장지까지 가서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 해주었다.

 

멀리서 온 그분께 아들의 이야기를 했고 위로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그분이 건네 준 책 띠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슬퍼하는 사람을 슬퍼하게 하라 그것이 사람 사는 세성이다.’

그리고 책안에 이런 글을 친필로 써주셨다.

‘현욱. 슬픔을 아는 사람이 되세요.’

 

사람은 분노보다는 슬픔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하지만, 잊고 있었던 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 이 세상엔 더 깊은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아들도, 나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