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내 욕심의 대상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일까?

두 아들 아빠 2010. 7. 16. 21:01

'네 자신을 알라' 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는 과연 자기 자신은 알았을까?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성찰이라 하는데 이는 도인의 수준이 되어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솔직히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했다면 그 말이 크게 못마땅하다. 

감정대로 말하면 '너나 알아라!'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척하는 모든 인간을 나는 혐오하기 때문이다.

 

남을 아주 잘 파악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점쟁이들도 그 부류의 하나다.  한 때나마 자기 욕심을 줄이고 멀리, 크게 보는 사람들이다.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그런 사람들이 무너질 때는 아주 형편없게 된다. 그 결과가 주변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온다.

 

'좋지 못한 욕심'은 지혜의 눈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경계해야 할 대상 중에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에게 높은 지위나 권력, 돈을 주어지지 않는 것은 욕심으로 크게 무너지지 않게 하는, 보이지 않아 인정하기 어려운 은헤가 아닌가 싶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하기 보단, '네 욕심의 대상이 무엇이고 어디 까지냐?' 대한 솔직한 자기 대답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밑도 끝도 없이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일을 앞두고, 아니면 자기가 속한 집단이나 지위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인간의 욕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우매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욕심 없이는 하루도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생리적 현상도 무의식적 욕심의 현상일까? 기본적인 욕심은 인정 되어야 한다. 앞서 '좋지 못한 욕심'은 그런 뜻에서 말한 것이다.

자신이 먼저 잘된 다음에 남을 돌보겠다는 것은 하급사기에 속한다.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게 맞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명을 주지 않으신다. 대부분 오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되어서 어떤 일을 하겠다기 보다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게 좋지 않은 욕심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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