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불쌍하다.

두 아들 아빠 2010. 8. 13. 15:23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자기 주변과 환경을 벗어나거나 뛰어 넘어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타인의 불행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자기에게 갑자기 닥친 불행에 대해서도 잘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의 적절한 보호와 지도가 필요하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다.’ 어이없는 말이지만 솔직히 부정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행복은 주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불행해진 사람이 불쌍해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불쌍하다’는 말이 요즈음 학생들에게는 ‘애자’ ‘루저’ 등등으로 폄하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 다를 어렵게 살 시절에는 그야말로 모두가 불쌍했었다. 그런대도 더 심하게 불쌍한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 아니면 물질적으로 도와주었다.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게 된 이 시대에 불쌍하다는 의미는 ‘낙오’ ‘탈락’ 등등으로 여기게 되었나 보다. 불쌍하다면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발동되지 않고 함부로 해도 되는 식이 되어 버렸기에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이 생긴 것 같다.

 

트러블이 심한 부부가 상담사를 찾아 갔을 때 두 부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남편에 이렇게 질문한다고 한다. “당신 부인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대개의 남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렇다”고 한단다. 남편의 상담은 이렇게 시작한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으면 진정으로 다가 갈 수 없다.

 

아들에게 누구를 지명하며 불쌍하니 도와주라고 했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보았다. 전혀 도와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녀석이 그 아이를 함부로 여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애가 애를 도와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즈음 애들 앞에서 누가 불쌍하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