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세대차이

역사의 재해석 능력

두 아들 아빠 2010. 8. 26. 09:16

세대차이에 대한 여러 가지 책을 읽고 느낀 점이다.

 

세대성찰의 선구자격인 칼 만하임(K. Mannheim,1952)은 한 개인이 사물이나 현상을 자신의 현재의 문제로 인식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17세 전후로 보았고, 25세 정도에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안정된다고 했다. 또한 다른 세대에 대해 거리를 두는 세대의식이 형성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연히도 우리 실정과 맞는 것은 17세에 해당되는 우리의 고등학생들은 이미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뉘어졌고, 인문계의 경우 문과 이과도 나뉜 상황이다. 또 25세는 대학을 졸업했거나, 군대을 제대한 이후며 이 때가 자기 미래에 대해 최고로 집중하는 시기다. 따라서 '만하임'의 이론은 한국의 현실에도 맞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대학입시라는 억압이 균형적인 지적 성숙을 대학입학 시점까지 유보시켰다가 대학진학 후 과거의 경험과 그 이후의 경험을 통해서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진다. 교과서적으로 이해하던 사고에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대개 급진적 관심을 갖게 된다.

 

문제는 급진적 관심과 사고가 아니라, 17세나 25세에 이전의 경험이 고착화 된 현상을 우려한다. 현재 대한민국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 층은 1940년대 생들이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영유아기 때 참혹한 6.25전쟁의 상흔이 외상적 스트레스로 잠재되있고 성인이 막 되어서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6.25전쟁으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며 대학교육은 특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만 받았다.

 

이들 세대는 참혹한 자기 경험을 정신과적 치유를 받은 적도 없거니와,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집단적으로 겨우 한글을 깨우친 이들 세대는, 오로지 조중동이라는 신문을 매일 꼼꼼히 읽은 것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지적만족을 느낄 뿐이다. 그들 신문은 역사의 올바른 재해석을 과거나 현재에 끊임 없이 방해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성인과 사회인으로 거듭날 우리의 젊은세대들은 역사의 재해석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막 사회에 진출하는 80년대 생들은 내몰리는 40년대 생들의 성장과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의식주 문제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며, 배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동시대에 비동시성'의 극한 상황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