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세대차이

1930년대 생들의 좌절과 굴욕

두 아들 아빠 2012. 1. 11. 10:17

몇 해전 알고 지내는 역사학자께 전화로 이렇게 여쮜 본적이 있다.

"1930년대 생들을 한마디로 하면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습니까?"

뜬끔없는 내 질문에 그분은 망설이지 않으시고 대답하셨다.

"좌절입니다."

여기에 더해, 편안해야 할 말년에 굴욕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1930년대 생들은 유년기와 청소년 때 학교에서 일본 말과 글로 배우고 해방을 맞이했다.

일제에 이어서 적응할 시간도 없이 미군정, 이어서 터진 참혹한 6.25 전쟁을 청소년기에 겪어야 했다.

30년대 초반 생들은 학도병으로 전장에 끌려 나가기도 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 두 형제는 30년대 생들이다.

 

미군이 먹다 버린 음식을 꿀꿀이 죽으로 꿇여 주린 배를 채운 세대이며, 폐해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월전전이라는 남의 나라 전쟁터에 가장 먼저 끌려간 세대다.

이들 세대의 비극은 30대에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30년생)부터 시작되었다. 박정희 군사반란 세력에 의해서 사법살인을 당했고

그 재판에 배석판사로 앉았던 이회창(35년생)은 대선에서 두번 씩이나 차떼기를 했지만 떨어졌다. 그의 눈빛에는 살인자의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만섭(32년)은 친구 조용수가 죽은 지 채 2년이 되지 않아서 그를 죽인 박정희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 사람을 한국 정치계의 원로라고 한다. 이 세대에서 눈에 띄게 뛰어난 문인이 없는 없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한글로 글을 배우지 못한 것과 시대로 인한 영혼의 황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이들 세대의 좌절은 문민 대통령을 한 명도 내지 못한 것이다.

광기 어린 시대에 광기 출만한 두 군인(전두환 31년생, 노태우 32년생)이 대를 이어 집권했다. 

같은 세대인 장세동(36년생)은 주군 전두환에게 충성을 다 했지만 결과는 감방행이었다. 자신은 충성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모진 놈에 밑에 오래 있으면 당하는 일이다.

 

다만 2인자 노릇을 했다.앞서 이회창과 형님정치, 상왕정치을 했던 이상득(35년생)

한 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 소릴 듣던 김상현(35년생)과 집사 노릇을 철저히 하다 감방 간 권노갑(30년생)

김영삼의 오른팔인 최형우(35년생), 노무현대통령 탄핵에 앞장 섰지만 이젠 존재감 조차도 없는 최병렬(38년생), 조순형(35년생)

한 때는 DJ 적통이었지만 소수에 소수로 전락한 한화갑(39년생)

 

요즈음 한창 회자되는 박희태(38년생)는 보선을 포함해 6선 국회의원에 국회 부의장, 의장직과 두번씩이나 한나라당 대표까지 했다.

하지만 선관위 해킹과 돈봉투 살포까지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게 다 보좌관에게 모든 걸 맡긴 정치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선관위 해킹도 돈봉투 살포도 다 보좌관이 있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이회창은 두 번의 대선 실패 후 조상 묘가 있는 예산을 연고로 충청의 지역당인 자유선진당에 영입됐는데 결과는 당이 깨지고 누더기가 되었다. 충남의 정서는 야당이기는 하지만 정권을 잡은 정부, 여당과 친밀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걸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회창은 이명박과는 철저히 담을 쌓고 박근혜에게 러브콜을 했지만 번번히 무시 당했다. 뜨는 태양이 지는 달을 처다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30년대 생 정치인들의 좌절의 원인 중에는 3 金이라고 부르는 윗 세대 20년대 생들이 워낙에 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반면에 아래 세대인 자수성가형 40년대 생들의 강력한 뒷바침도 있었다. 아우 덕에 잠시 큰 영화를 본 상득이 형처럼.

 

이들 세대 모두가 찌질, 우울 모드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고건(38년생)만큼 관운을 타고난 사람은 드물다. 가히 30년생 중에서 군계일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위권료를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 도백과 장관 세 번, 국회의원, 한번도 힘든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각각 두 번씩이나 하고 고노무현전대통령 탄핵 때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했다. 애초에 그의 입각이 실패라고 거론됐지만 탄핵 권한대행을 맡긴다면 그만한 인물은 없다고 본다. 결과론이지만 고건은 탄핵을 염두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까지 무려 6명의 대통령 밑에서 중책을 맡았다.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지켜야 할 3계명을 줬다는데.‘줄서지 마라’ ‘돈받지 마라’ ‘술 잘 먹는다는 소문을 내지 마라' 철학자 치곤 정말 간단 명료하지만 그 세대에 명확한 지침이 아닐 수 없다.

 

앞서 거론된 30년대생 인물 중에 노무현과 맞짱 뜬 사람은 거의가 말년이 좋지 못하다.

이제 30년대 생들은 역사의 뒤 안길로 완전히 접어 들었다. 어찌보면 그들의 인생은 가수 최희준(36년생)의 노래 제목처럼 '맨발의 청춘'으로 시작하여 '하숙생'으로 끝나지 않는가 싶다. 광기어린 시대를 살다간 그들이 노욕을 버리고  더 이상의 굴욕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