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세대차이

20대는 정말 ‘개새기’ 들인가?

두 아들 아빠 2010. 9. 24. 15:41

‘20대 개새끼’론에 할 말 있다.

 

진보적 성향의 기성세대는 80년대 생들이 사학법 개정의 관철,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 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촛불시위와 선거 참여도 저조했다고 질타했다. 자기 밥그릇도 챙기지 못하는 무능자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20대의 전투경찰들이 평화적인 촛불시위대에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군화발로 여대생의 머리를 차는 등, 폭력적 진압으로 ‘개새끼’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오죽하면 촛불시위가 있었던 2008년에 수도권에서 전투경찰에 근무했던 자들을 기업면접에서 모조리 떨어 트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집단적으로 취직이 되지 않아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천안함으로 사망한 수병들은 대부분 20대 꽃다운 나이다. 그들의 죽음이 숱한 의혹에 싸여 있었지만 같은 20대들은 원인 규명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다고 20대에 대해서 비교적 포용적인 기성세대도 이 부분에서는 정말 한숨이 나온다고 한다. 그들의 유가족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총수 내정자로부터 ‘짐승같이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 세대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졸업 후 사회에 나온 선배들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20대의 좌절은 선배 세대인 70년생들부터 고스란히 이어져 온 일이다.

 

자기들에게 올인 한 부모들 보기에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개인주의는 심화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들은 집단행동을 해 본적이 없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내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촛불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전경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직원 소대장이 고참병을 시켜서 지시하는 것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장기간 동안 매일 출동하여 극도의 피로가 쌓이고 자기들 보다 더 많은 시위 군중 때문에 심리적 위축이 폭력진압을 부르게 됐다는 타당한 변명이다.


중요한 건 20대들의 눈에는 여야의 정치인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다는 사실과 집단적으로 배운 세대로서 막무가내 식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방법은 철저히 무시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무의식의 항변이다.


하지만 역사는 어느 한 세대에 특별한 사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응답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스스로 치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아버지 세대는 얼마나 잘났나. 살펴보자!


그들의 아버지 세대


현재 20대의 아버지 세대는 대게 50년대 생으로 초등교육은 물론 중등교육을 절반가량은 받았다. 따라서 이전 세대인 40년생들에 비해 교육의 해택을 두 배 이상은 받았다. 70년생 보다는 교육으로 인한 부모와의 단절은 덜하지만 그들의 부자 관계도 그리 친밀하지는 않다. 그러나 부모와의 현격한 세대차는 그들 세대도 존재한다.


20대들의 아버지 세대는 남자는 장발에 여자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통블생’(통기타, 블루진, 생맥주)이라는 문화를 즐겨, 당시 기성세대들에게 젊은 놈들이 한없이 나약하고, 히피족 같이 퇴폐적이라고 질타했다. 더구나 그들의 우상인 연예인들은 대마초 사건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50년대 생들은 세대문제에서 처음으로 ‘요즈음 젊은 것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은 이조시대부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늘 상 내려 온 것이다.


부모세대인 50년대 생들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보면, 독재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해서 치마의 길이를 재고 머리길이를 측정하고 단속했다. 통행금지로 밤 12시 넘어서는 돌아다닐 수 없었다. 그랬다간 방범대원에게 붙들려서 파출소에 끌려가 새벽 4기 넘어야 풀려났다.

 

체제비판이나 박정희 욕을 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거나 때론 아주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 세대의 그런 두려움을 20대는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에게는 ‘비굴’이라는 딱지가 이마에 있기 때문이다.


20대들은 자신들의 문제도 있지만 그 아버지들의 문제로 기인했다고 본다. 아버지 세대는 20대는 70년대, 30대는 80년대, 40대는 90년대, 50대는 2000년대를 살아 왔다. 산업화의 절정기를 살면서 인력이 모자라서 조금만 배웠다면 잘 먹고 잘산 세대다. 젊은 시절 유신의 압제와 선배세대의 7년간의 월남전 참전으로 도무지 저항할 수 있어 잠자코 일만 열심히 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세대다. 하지만 저항의 뿌리를 제거 당해 ‘모단 돌 정 맞는다.’ 는 사고가 있다.


자신이 좀 더 배웠다면... 하는 아쉬움을 40년대에 이어서 많이 갖고 있기에 자식들을 공부에 열중했다. 지금의 50대는 '영어 몰빵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 세대가 조기유학을 맨 처음 열어 20대들은 해외 어학연수는 기본이 되었고, 영어능력 시험 때문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원까지 보냈다. 그렇게 공들인 20대가 기대했던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나 인턴이었다. 그것도 감지덕지다.


그들의 아버지나, 386세대가 대학생 때, 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넋 빠진 놈 아니냐!'면서 아버지께 험악한 핀잔을 들을 일이다. ‘대학생이 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안 해도 해외에 파견되고 해외 지사장도 너끈히 해내고 있다. 사람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가 씌워 준 88만원 세대인가?

 

어찌되었건, 젊은 세대의 성향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이고 그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기성세대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깔아 놓은 길을 저항을 하던지, 아니면 순응하고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굴욕적인 '88원 세대'라는 칭호를 자기들을 가르친 교수로부터 받았다.


그런 그들에게 위로는 주지 못할망정, 각개약진(各個躍進)의 사회니, 각자도생(各自圖生) 하라는 말은 그들을 더욱 좌절 시키는 무책임한 말이다. 매를 맞고 울고 온 아이에게 ‘너는 왜 때리지 못했냐!’고 닦달하는 속없는 부모와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균형 잡힌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김광수경제연구소장은 『88원세대는 부동산 거품에 대한 책임이 하나도 없는데, 붕괴로 인한 피해까지 입어야 한다. 88만원세대 같은 워킹푸어를 도와줘야지 거품에 책임이 있는 하우스푸어를 도와줄 일이 아니다. 88만원세대와 근로저소득취약계층에게 부동산에 들인 돈의 절반만 써도 부동산 붕괴의 사회적 충격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소장은 도와주어야 한다는 워킹푸어가 하우스푸어의 자식들인지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다. 워킹푸어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부동산으로 쌓은 부를 그대로 전수받은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