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자녀를 매로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두 아들 아빠 2011. 5. 6. 11:22

서울시 교육청은 2010년에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금지 했다. 이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는데, 학교 체벌은 대부분 ‘교육적 목적’이라는 것과 ‘집단유지’ 차원에서 용인되어 왔다.


현재 한국사회는 서양과 동양의 교육방법이 뒤섞여 있다. 서양은 개인의 자존감을 중심으로 하는 ‘도드라짐’이라면 동양은 집단 속에서 개인의 조화와 ‘적합성’에 중점을 두었다. 서양이 체벌금지가 더 빨랐던 이유 중에는 개인의 자존감 때문도 있다. 반대로 우리사회가 아직도 체벌에 대해서 강력하게 지지하는 계층이 있는 이유는 단체 속에서의 개인의 의무를 더 주장하기 때문이다.


전혀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겠지만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적에 매를 들거나 손으로 때린 적이 있다. 여하간 체벌은 교육적 목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분을 참지 못하거나 자기 속상 것이 폭발하는 과정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부모도 사람인지라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매를 드는 수도 있다. 감정 절제가 되지 않는다면 체벌은 아애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옛 어른들은 그나마 감정을 억누르는 방법으로 아이에게 매와 목침 등, 올라 설 도구를 가지고 오게 하여 혹여 치솟았던 감정을 누를 시간을 벌수도 있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자녀가 시간을 너무 끌거나 다른 언행으로 부모의 화를 더 돋울 수도 있다.


오래 전에 한수산 씨가 어떤 잡지에 기고한 글이 생각난다. 이제 막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아들과 놀러 갔는데 음료수 자판기 앞에 줄을 서다가 아들이 뽑겠다는 것을 뒤에 줄 선 사람들을 배려하려고 자신이 동전을 넣고 신속하게 뽑았다고 한다. 그 때 아들이 화가 나서 “아빠 굉장히 씨팔이야!” 라고 했단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말을 듣고 당황했지만 아들을 달래며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자녀의 기를 죽이 말라고 한 것에 대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쳐도 가만히 두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수산씨의 아들은 오래 동안 아빠와 함께 줄을 섰고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되자 동전을 놓고 자신이 원하는 음료수를 뽑으려고 했는데 이 모든 걸 아빠가 대행해 버렸다. 그래서 화가 났고 욕까지 하게 된 일이다. 이 과정에서 한씨의 아들은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은 없다. 다만 불편한 욕을 들었겠지만 자기 아버지에게 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욕으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올바른 아버지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말해 주면서 아들에게 사과하며 이해를 구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아버지라면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흠신 두들겨 패며 되려 아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기어이 받아 냈을 일이다. 내가 그랬다. ㅠ


아이를 ‘작은 성인’으로 대하라는 말이 있다. 몸을 거칠게 다루거나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말이 쉽지 일관되게 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부모의 화를 머리끝까지 올리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의지와 용기도 충만하다. 자신의 화를 부모에게도 전가하여 부모가 화가 나서 자신을 두들겨 패더라도 기어이 그렇게 하고야 만다. 그게 힘없는 아이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복수의 전부이니까.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수많은 조언과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부모 교육에 대한 것은 찾기 어렵고 있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부모 자신은 어른 일 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완전한 인격체라는 자만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부모가 자기 부모로부터 애착관계단계에서 무관심이나 방관, 학대를 받았거나, 유소년기에 용서, 관용, 사랑이 부족했다면 이미 부모 자신 안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내포되어있다. 감정이 절제가 되지 않고 인색한 관용의 결정적 이유다. 그런 부모의 억울함이 매로 자녀에게 전위되는 짓은 막아야 한다.


체벌의 본질은 ‘죄를 저지른 벌의 대가를 매로 다스리는 것’인데 체벌은 일관성과 적절성에 항상 문제가 따른다. 따라서 체벌의 정당성 논란은 아이와 학생을 때릴 수밖에 없는 정황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선생의 실력과 자격이 먼저 요구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은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까?

구약에서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자녀를 초달치 못한 자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한다.


하지만 신약에서 예수의 어떤 가르침 속에 아이를 훈련시키는 수단으로 체벌을 옹호하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는 구약의 가르침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뭔 말을 한다고 알아듣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4세기가 되어서야 영아살해를 살인으로 규정했고,(384년 로마법) 어린이들에 대한 학대를 법으로 금지하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동물 학대 금지법 이상의 센세이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