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덕담

두 아들 아빠 2011. 11. 20. 08:17

덕담(德談)의 한자 풀이는 ‘어진 말씀’이다. 덕담이 좋지 않은 상황을 말장난으로 넘어가거나 본질을 호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잘 한 일에 대해서 칭찬하거나 수고로움에 격려와 치하도 덕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자끼리의 소통 중에 글과 문자 메시지도 있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대화다. ‘어따 대고 말대구야!’, ‘닥치고 들어’식의 일방적인 것은 대화가 아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의 말도 들어 줄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양방향의 대화다.

 

그런데 어른과 아이, 선생과 학생,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에는 진정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관계성에서 상위권자는 자기만의 일정한 틀이나 관심사를 정해 놓고 있어 그 틀 안에서는 대화가 가능하지만 넘어서면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 국립대의 한 교수의 말씀이 요즈음 젊은 대학생들이 굉장히 발랄하고 쾌활한 면이 있는데 그건 자기들끼리 놀 때고 강의시간이 되면 얼굴이 경직된다고 한다. 그건 수업의 진지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남성중심과 서열주의, 여기에 연령지배체제까지 존재해서 세대간, 계층 간에 진정한 대화의 창이 열려 있지 못하다. 이런 폐해 때문에 ‘한국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고 할 정도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덕담은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과 윗사람들이 어질지 못해서 그런지 덕담에 인색하다. 명절 때 덕담이라 하는 것들이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취직해야지’ ‘결혼 해야지’ 등등 덕담이 아니라 주문과 생계형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면 너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니?’라는 식은 전혀 없다. 진정한 덕담은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칭찬뿐 아니라 위로가 함께 있어야 한다. 과거 우리 어르신들은 무척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거나 큰 사고들 당한 아래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만하기 다행이다.” 최고의 덕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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