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취미

영화 ‘부러진 화살’

두 아들 아빠 2012. 1. 29. 15:25

먼저 영화감독인 정지영에 대해 거론하지 않고 넘어 갈 수 없다. 한국 영화는 감독이 거의 모든 걸 해결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나리오 편집부터 영화의 전 과정이 감독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그만큼 비중이 크다.

 

90년 초반, 6.25 동란 중에 빨치산를 다룬 남부군, 이후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하얀전쟁’까지는 봤는데 세 영화 모두 안성기가 캐스팅 되었다. 그 외에 여러 영화는 안타깝게도 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부러진 화살’도 앞선 두 전쟁 영화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화살이 제목에 들어가고 석궁이 영화의 아주 중요한 소재이니까!

 

이 영화의 최대 화제는 실체적 사실 여부다. 하지만 영화란 처음부터 끝까지 실체적 사실을 다루었다고 해도 그저 ‘사실 재현’일 뿐이다. 수 년 간의 법정투쟁을 단 수 십 분 안에 압축설명한 일이다. 이를 두고 90%이니, 98% 이니 하는 순도 논쟁은 별의미가 없다고 본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영화도 순도를 따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논픽션 다큐멘터리도 엄청난 편집의 결과물이다.

 

한 개인이 국가 권력의 최상위인 법원과 제 3의 권력이 된 언론을 상대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과 이에 굴하지 않고 투쟁한 것은 기사화는 물론 영화의 소재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군대에 입대하면 훈련소에 가기 전인 보충대에서 자기 아버지가 고위관료, 영관급 장교나 대학교수, 대기업 사장이라면 신상명세서에 적어 넣으라고 했다. 그 이상의 장차관급이나 장군들은 이미 분류가 되었고 파악이 끝났다는 뜻을 깨다. 여하간 어찌되었건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수는 지도층이자 영화 속의 주인공도 인정했듯이 보수집단이다.

 

이들 집단에서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거짓을 진실로 바꾸거나 그렇지 못했을 경우 누군가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한 단면을 보여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학 당국은 처음엔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고 문제를 덮으려고 시도했다. 주인공이 이에 동조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만일에 불이익을 당한 몇몇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떠들어 대도 더 큰 범위에서 야합이 이루어진다면 별 소용이 없었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덮어두지 말고 실수를 인정하자고 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는지만 어느 사회나 집단에서도 왕따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 한데 몰아 ‘사회 부적응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왕따란 그 사회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 모순의 표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대학 당국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대학은 법원에 어떤 방식이든 줄을 대서 자기 집단의 명예를 지키고 이에 반한 조직원에게 불이익을 당하게 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교수의 재임용 거부 이유 논란에는 관심이 없다. 일반인이 거기에 접근할 수 없을뿐더러 재임용이란 그들이 만들어 낸 리그이기 때문이다. 그 리그의 법칙이 부당하다면 그 안에서 우선 해결을 보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이슈로 삼거나 국가 기관의 중재, 아니면 법정에서 다투어 해결하면 된다.

 

문제는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과정이 공정했느냐다. 영화도 이 점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모든 판사들이 영화에 나온 사람 같지는 않다. 경직된 법의 논리보다 약자 편에 서는 인간적인 판사들도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든 인간적 판사들도 기실 잘 한 것은 아니다. 법은 엄격한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도 인간이 다루는 만큼 감정이 없을 수 없다. 핵심은 정치적이거나 인간적 관계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건에서 공정할 수 있느냐다. 영화에서 답은 시종일관“아니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등장하는 판사들의 가정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만 보여주었지 전혀 다루지 않았지만 주인공과 변호사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내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변호사가 차 안에서 아내에게 자신이 사고 칠 것을 예고하는 통화 내용인데 아내는 “꼭 그렇게 해야 돼?” 라고 묻고 더 이상 말리지 않고 남편이 없는 동안에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고 하는 대사다. 어찌되었건 “이놈의 집구석 남편이 문제다.” 라는 것에 이의를 달수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저 예산으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수백억을 투자하는 블록버스터 류나 다큐 작품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 날 수 있고, 또 예상되는 사건을 다루었다는데 공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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