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중 2 병에 대한 관찰기

두 아들 아빠 2012. 12. 27. 10:32

청소년문제 진단과 처방을 대학교수들에게 질문하면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말이 " 교육문제, 경쟁구도, 황금만능" 딱 세 가지다. 그리곤 가정의 관심과 학교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이끌어 가야한다고 마무리 한다. 그거 누가 모르나? 하도 들어서 이제 외웠다.

백과서전에 '중2병'이란 자아 형성 과정에서 ‘자신은 남과 다르다’ 혹은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인터넷 속어라고 되어 있다. 그 외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한민국 중학교 2 학년생들은 평균적으로 병이 있다고 한다. 개인에 따라 조금 일찍 오기도 하고 늦게 오기도 하겠지만 한번쯤 치러야 할, 일종의 홍역 같은 것이 되었다. 뭐 혼자 잘 삭히고 넘어 가면 병이 들었는지 알 수 없겠지만 그렇게 치르는 홍역은 드물다.

그 증상은 당혹스럽고 처방, 대책이 없다.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다. 여기에 쉽게 답을 내는 부모는 거의 없다.

학교 안팎에서 말썽을 펴서 주변과 집안을 확 뒤집어 놓기도 한다. 여기에 공부는 완전 뒷전이다.

 

아이들은 10살 전후로 자아가 드러나기 시각한다. 이 때 부모가 온존치 못한 방법으로 제압하거나 억누르면 잠재 돼 있다가 중학교 때 나타난다. 어쩌면 나중에 모자란 것을 채워 줄 수 있는 방관이 나을 수도 있다. 이미 자녀는 부모의 제압과 억누름을 받았기에 더 크게 반발하게 마련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알면 뭐하나 대책이 없는데...

 

만 5세 때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을 다닌 아이는 14세인 중학교 2학년이 되면 10년 공부를 한 셈이다. 유치원에서 공부 가르키는 것! 처음엔 좋겠지만 나중엔 거의 죽음이다. 10년 공부! 그거 쉬운 거 아니다. 그 때 학업에 대한 압력이 더 높아지기 시작하니 중 2 병은 한계에 다다른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간 저항을 한 아이는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때 또 잘 참고(?) 넘어 왔다면 고등학교 때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중학생 자녀들만 문제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가 되는 아아는 거의 큰 자녀들인데 이 때 부모들의 나이는 대략 불혹을 넘어선 때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흔들리기에 경계해 할 나이다. 중년이 가장 일탈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부모의 흔들림은 곧 바로 아이에게 전도된다. 부부관계성의 소원함도 원인이다.

 

도시에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있는 것 같다. 그 바이러스를 탄광 안 카나리아처럼 인식하는 존재와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영혼은 여리고 예민해서 주위에 자길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는데 부모와 학교는 그저 "참어!" 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아이와 어른의 생물학적 구분은 수태의 가능여부다. 생물학적 말고 뭐 철학이 따로 있는가? 따라서 청소년시기의 문제의 근원은 '성의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수태가 가능한데 억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인류학적 본연의 임무를 부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이걸 해소, 완화할 길이 없다. 나중에 스님과 신부님으로 키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녀에게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나마 의식이 있는 부모는 자기들에게 먼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집중은 다시 자녀를 바로 세우고 가정을 결집시키는 힘으로 발휘한다. 그런데 대게의 부모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더 큰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일 뿐 아니라 구세주 역할도 능히 한다. 자녀가 문제없이 부모의 원대로 잘 커왔다면 그거 부모가 잘 한 거 아니다. 혼자 잘 큰 거다. 그렇게 확신해야 잘난 자녀에 존중받을꺼라고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