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힐링의 시작 '너와 나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두 아들 아빠 2013. 10. 22. 11:29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종교와 철학을 일구어왔다. 암자와 절, 교회와 수도원 때로은 광야와 동굴 속에서 자기 수양과 더불어 이웃, 국가, 민족, 인류에 이바지하려고 했다. 종교와 철학뿐아니라 문학과 음악, 미술이 꽃 핀 르네상스의 결과가 참혹한 제 1, 2차 세계대전이었고 이후 전 세계에서 크고 작은 전쟁으로 엄청난 사람이 학살을 하고, 당했다. 그래서 종교와 철학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 되었다.

 

그것들이 총체적, 결론적으로 보아 도무지 인간에게 도움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긍정의 철학'이다. 그저 편한대로 '긍정의 심리학'이라고도 부른다. 생존의 문제가 걸려서 그런지 종교와 철학 모든 분야에서 '긍정'이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힐링을 찾아서 안 된다는 생각이다. 긍정은 '알지 못하는 불안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자'는 자기 최면의 일종이다. 최면은 깨어 났을 때가 문제다.

 

개인이나 집단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문제의 근원이 분명 외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내부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중을 면밀히 따져 보지 않는다. 한 개인과 집단이 가지고 있는 역량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역량을 넘는 능력을 기대와 요구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책과 질책을 한다.

 

조선왕조의 멸망의 원인 중에 고종의 무능, 민왕후의 간계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들보다 더 무능하고 던 간계한 왕과 와비가 있었다. 내부의 한계는 미미했고 멸망의 핵심적 원인은 일본제국의 엄청난 호전성과 무력이었다. 선비가 깡패를 당해 낼 수 없다. 역사의 본질은 옛날 이야기다. 따라서 얼마든지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명료한 역사 보기를 이리저리 꼬아 보니 짜증나고 재미없는 역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개 문제의 근원과는 접근이나 소통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가장이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처음에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폭력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때에 따라서 원인을 제공한 어머니나 자식을 서로가 원망한다. '엄마가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지....' 하면서 말이다. 결국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반목까지 하게 된다. 독재자들의 노림수도 이와 아주 유사하다.

 

어렸을 때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피해의식은 폭력의 원인이 자기 때문이거나 자기 잘못이라는 인식이다.  부모가 극한 감정 싸움을 하거나 이혼을 했을 경우 대게 큰 아이는 저항하지만 작은 아이는 자기 잘못으로 돌려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해주어야 할 첫 말은 '네 잘못이 아니다.' 다. 아이들만 그렇지 않다.시험에 낙방한 사람, 취업이 잘 안되는 사람, 실직한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등등 중에 자기 잘못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게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등 우리사회의 모순과 잘못의 원인을 찾아가면 그 뿌리는 남북분단에 봉착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탓하고 원망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부자와 가난한 자, 대도시와 지방, 남자와 여자, 한 가정의 세대 간에도 질시하고 반목한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달리 극심한 경쟁구도에 빠지게 된 이유도 대결적 구도를 버리지 못한 남북분단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현재의 남북분단이 심각한 것은 남과 북이 종교와 철학이 확연히 다르다는데 있다. 반세기가 넘어도록 대결적 구도가 완화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다. 대결적 구도를 계속 유지내지는 증폭시키려는 세력이 현재 남북한의 주류들이다. 그들은 지식과 부, 권력까지 쥐고 있으면서도 틈틈히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이를 남북 긴장으로 몰아가 희석내지는 상쇠시킨다. 이 세상의 부와 권력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거뭐질 수 없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온전한 가정',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당한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래에 더 나아지려는 개인이나 집단의 노력과는 별개로 현재 나와 너 그리고 가정의 한계, 내가 속한 집단의 한계는 분명 긋고 생각해야 한다. 한계를 넘었다면 너와 나,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 한계를 긋지 못함은 현실감각이 결여되었거나 욕심이 과한 것이고 타인에게 한계를 넘어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압력이고 착취다. 종속을 요구하는 방편으로 삼기도 한다.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말로 끝을 맺는다.

'힐링을 말하기 전에 되도록(자기 한계 이내에서) 내가 남을 어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너와 나도 한계를 넘겨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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