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가구

두 아들 아빠 2014. 2. 4. 18:17

- 가구 -   도종환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렇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삶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기로 먹고 살 수 없는 세상  (0) 2014.10.19
행복한 척 하기  (0) 2014.03.10
힐링의 시작 '너와 나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0) 2013.10.22
정년 연장 유감  (0) 2013.05.19
출근 길  (0) 201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