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분석

극적인 입장 조용한 퇴장

두 아들 아빠 2013. 11. 8. 11:58

 

박근혜가 런던시장 초청 만찬장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다 발로 치마를 밝아 넘어질 뻔할 때 이를 보고 달려 온 런던 시장에게 “극적인 입장”(dramatic entry)이라고 하고 만찬이 끝나고는 “조용한 퇴장”(quiet exit)이라고 했단다. 그냥 일상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에피소드로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동행한 언론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뭔가 기사거리를 실시간으로 써내야 하는 압박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박근혜도 연출까지 하더라도 기사거리를 창조해야겠다는 의지가 살짝 엿 보인다.

 

예측하지 못한,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영어로 즉각적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준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만찬이 끝나고 '조용한 퇴장(quiet exit)'이라고 한 것을 보면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이 가쉽거리를 국내 언론에 보도통제를 요구했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나라 글과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 나라의 말로 연설을 한 다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대단한 배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굴욕적인 측면도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국력의 차이가 현격히 우위인 국가 수반이 그렇지 못한 국가를 방문에서 그 나라의 말이나 글을 유창히 사용하면 분명한 배려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일본제국이 한글을 모욕주기 위한 말 중에, 한글로 발음이 표기 안 되는 외국어가 없어서 한국은 어느 나라의 식민지를 받아도 무방하다는 말이 있었다. 어떤 측면에서 박근혜가 이번 유럽 순방에서 이를 잘 드러냈다. 프랑스에서는 불어로, 영국에서는 영어로, 이전에 중국에 가서는 중국어로 연설 했다. 일본어만 유창하게 구사하면 가히 글로벌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다 좋은데 같을 말을 쓰는 우리 국민과, 북한과 소통하길 간절히 바란다.

 

넘어질 뻔 한 상황이 작위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즉각적으로 영어가 튀어 나온다는 것은 꿈에서도 영어로 말하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영어가 세계적으로 대세라고 해도 번역이나 통역이 아주 애매한 부분이 아니라면 우리말과 글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 그게 싫다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그 외 국가 방문 시에도 그 나라 말로 연설을 했으면 한다. 그러면 정말 글로벌 대통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의식이 드러날 때도 있고 그 반대로 의식 중에 무의식이 나타기도 한다. 박근혜의 내면에는 자신의 지난 삶과 선거부정까지 동원해 대통령에 당선 된 것을 ‘극적’이라고 회상하고 앞으로 퇴장은 ‘조용히 하고 싶다’는 의지나 바람을 이번 일로 무의식으로 표출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역사에 있어서 ‘극적인 입장에 의한 조용한 퇴장’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먼 역사까지 살펴 볼 것도 없다. 독재자 자기 아버지 박정희를 보면 안다.